[안승준의 다름알기] 루르드의 기적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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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뒤로 보이는 빛 ⓒ픽사베이
▲구름 뒤로 보이는 빛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프랑스 작은 시골 마을 루르드에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가 있다. 1858년 14살의 작은 소녀였던 벨라뎃다 앞에 성모마리아는 18번이나 모습을 드러냈다. 주임 신부님으로부터 시작된 진상조사는 과학자들과 여러 전문가로 이어졌지만, 그녀 앞에 벌어졌던 초자연적 현상들에서 그 누구도 어떠한 조작의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성모의 발현을 인정했고 벨라뎃다가 성모와 만났던 마사비엘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은 기적수라 불리게 되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기적수를 향해 상처받은 사람, 아픈 사람, 장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왔던 이는 벌떡 일어나고 피부병은 깨끗이 낫는 기적이 이어졌다. 기적을 경험했다는 이들은 수천 명이 넘어가고 그중 수십 건은 정밀 조사 끝에 기적으로 인정되었다. 2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샘물은 기적의 가능성을 가득 담아 흐르고 루르드는 한 해 6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프랑스 제2의 관광도시가 되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시각장애를 가진 내게 루르드 방문의 기회가 생겼다. 담담한 듯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나의 가장 큰 관심 또한 기적수와 내 눈에 집중되고 있었다. 손을 씻고 눈을 닦고 세수를 하는 동안 나의 기도는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무릎 꿇은 이가 보이면 최대한 몸을 숙였고 동굴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경쟁하듯 더 깊숙한 동굴 가까이 몸을 가져갔다.

기적수로 씻고 기적수를 마시고 기적수에 온몸을 담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날씨에 물은 극도로 차가웠지만 기적에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잠깐의 오한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지나 닷새가 되는 동안 씻고 닦고 마시고 뿌리고 하는 일을 반복했지만 내가 바라던 모양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굴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다니던 할머니에게도 차가운 성당 제대에 엎드려 기도하던 아주머니에게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집으로 가져올 기적수를 작은 통 몇 개에 나눠 담으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아주 슬프거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시각장애와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 삶에서 바라야 할 기적이 시력 회복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장 먼저 내 눈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어도 건강한 눈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루르드에 방문하게 된 것도 오늘을 기쁘게 살아낸 것도 내 곁에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편히 몸 누일만한 보금자리가 있는 것도 이전의 나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기적이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기적이라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지 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적이다.

만약 내가 갑작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다면 난 엄청나게 기뻐했겠지만 머지않아 그것은 내게 당연한 일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눈으로 보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평범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구성하는 모든 평범함은 어떤 이들에겐 분명 기적임이 틀림없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내일과 또 내일에 이어지면서 난 매일매일 기적을 경험하며 산다. 루르드 마사비엘 동굴에 내 지팡이를 걸어놓고 오지는 못했지만 드러나지 않는 많은 기적을 선물 받았음을 믿는다.

루르드의 기적수는 건강 회복이 가장 필요한 이에게 건강을, 상처 회복이 우선하여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선물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아직 잘 모르지만 내게도 가장 필요한 새로운 기적이 선물로 주어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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