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 토크] 처음 만나는 세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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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까치발’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 포토
▲영화 ‘까치발’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 포토
  • 영화 <까치발(Tiptoeing), 2019>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여섯 살 지후의 세상은 완벽했다. 친구처럼 놀아주는 아빠, 종달새 같은 딸의 재잘거림에 언제나 귀 기울여 주는 엄마. 늘 충만하고 따뜻한 가족의 사랑에 둘러싸여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한 세상. 그 세상에 금이 가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딸의 까치발이 그저 가벼운 습관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장애일 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심각한 진단을 받은 후부터 세상 당차고 쾌활하던 엄마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는데… 영화 <까치발>의 이야기다.

영화 <까치발>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를 딸과 가족의 이야기를 당사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절제되고 균형 있게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은 영화 속 이야기의 당사자인 권우정 감독. 그녀는 이미 전작 <땅의 여자>를 비롯한 5편의 영화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중견 감독이기도 하다. 전작들에서 주로 농촌의 이야기를 담아온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딸 지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엄마의 성장통을 담았다.

시작은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딸의 장애 진단 후,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늘 그리던 딸의 그림 하나하나, 글씨 하나하나에도 의사의 진단을 떠올리며 예민해지고 엄마의 지시를 채 따라 하지 못하는 딸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그뿐인가. 엄마인 자신의 두려움을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과 카메라 앞에서 심하게 다투기까지 한다. 마냥 견고할 것만 같던 그녀의 세상에도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두려움과 균열이 자신의 세상을 잠식해 가도록 보고만 있지 않는다. 아이의 장애를 겪은 부모들을 만나고 장애 당사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겪어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녀의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직면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가 그녀의 영화에 담겼다.

그녀가 인터뷰한 엄마들 대부분이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죄책감에 시달렸다. 임신 중 자신이 뭔가를 잘못 먹어서, 혹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아이에게 장애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다못해 임신 중에 콜라를 마셨던 사소한 기억까지 엄마의 죄책감이 되기도 한다.

지금껏 여성들은 건강한 출산을 위해 결혼도 하기 전부터 얼마나 많은 절제와 제약을 강요받아 왔던가. 그러다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모든 책임은 엄마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의 장애로 가장 힘들 사람은 엄마다. 그런 엄마에게 위로만 보태도 힘겨울 판에 죄책감까지 더하는 사회라니!

내 장애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모두 엄마 탓을 했다. 소아마비 백신을 미처 맞기도 전에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모두 하나같이 ‘엄마가 잘못했네!’ 탄식하곤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입을 모으지 않아도 엄마는 영화 속 엄마들처럼 자신이 했던 온갖 먼지 같은 잘못들을 끄집어내 자책의 땔감으로 삼았을 텐데 말이다.

“제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걸 늘 엄마가 상기시켜 주시네요!”

영화 <마마적신기소자(妈妈的神奇⼩⼦: Zero to Hero)>에서 주인공 소화위는 엄마에게 이렇게 외친다.

세상이 말하는 ‘정상성’이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 사람 구실을 해내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소화위의 엄마는 끊임없이 아들이 기준 미달이라는 사실을 각성시키고 채근한다. 아들이 고백도 못 해보고 첫사랑을 놓쳐 버릴까 봐 엄마가 먼저 나서서 고백해 버리기도 하고 이웃이 선의로 내미는 콜라 한 병조차도 동정일까 봐 받아넘기지 못한다. 그런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 소화위는 달리고 또 달린다. 소화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세상의 눈이 아니라 바로 엄마의 눈이었다.

어디 소화위 뿐이랴. 장애인에게 세상이 장애를 얼마나 삐딱하게 바라보는지, 얼마나 야박하게 존재의 값을 매기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존재는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가족의 눈으로만 장애를 보지 않는다. 걱정한다는 이유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세상의 시선과 잣대로 장애를 바라본다.

“걷지도 못하는데 공부까지 못해 봐라!” 초중고 12년 동안 나를 학교에 업고 다니시던 엄마는 등 뒤에 업힌 내게 늘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만나는 어른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업고 다니는데 네가 공부를 잘해야지!

그뿐인가. 나는 어른들에게 못 걷는 아이가 아니라 안 걷는 아이 취급을 받았다. 운동하면 힘이 생겨서 분명히 잘 걸을 수 있을 텐데 어른들 생각에 나는 늘 게을러서 운동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였다.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나는 늘 되도 않는 걸음마 연습을 하느라 헛되게 애를 써야만 했다.

나는 늘 그렇게 있는 그대로 충분한 아이가 아니었다. 못 걸어도 괜찮은 게 아니라 못 걸으니까 다른 것이라도 잘 해내야 나의 쓸모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늘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했고 잘 해내지 못하면 좌절했다. 잘하는 게 별로 없는 평범한 아이여서 좌절하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고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도 만족할 수도 없었다.

영화 속 지후 엄마가 장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딸에게 까치발을 지적하기 시작했을 때 지후에게서 나는 어린 나를 보았다. 지후는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하고 엄마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자기가 또 틀릴까 봐, 엄마가 자기를 미워하게 될까 봐 어린 지후는 그 특유의 생기를 잃어버리고 점점 어두워져 간다.

그러나 어린 지후의 좌절을 금방 알아차리고 세상의 시선이 아닌 엄마의 시선으로 과감히 시선을 전환하기로 한 그 엄마의 선택은 얼마나 현명한가. 까치발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완벽한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 존재 자체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더 슬픈 일이다. 오로지 정상성과 효용성만으로 가치를 매기는 세상의 눈으로는 아이 안에 숨은 반짝임을 발견할 수 없다.

아이가 만나는 첫 번째 세상은 가족이다. 존재 그 자체로 첫 번째 세상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하면 아이는 더 큰 세상을 향해 과감히 문을 열고 나서지 못한다.

영화 속 인터뷰이 김지수 씨가 눈물 글썽이며 엄마에게 듣고 싶었다던 그 말 “괜찮아”.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 한 마디를 스스로에게 할 수 있기 위해 우린 얼마나 힘겨워야 했는지… 참 길고 고된 시간이었다.

엄마가 모진 성장통을 겪으며 열어낸 지후의 세상이 앞으로도 더 완벽하게 아름답기를.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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