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신고보다 배려와 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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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주차 구역을 택배 차량이 막고 있다.ⓒ조미영
▲장애인 주차 구역을 택배 차량이 막고 있다.ⓒ조미영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급하게 아들을 데리러 나가려는데 시동이 꺼져있는 승합차가 내 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가끔 있는 일이라 택배하는 분들이 바쁜 걸 알기에 그냥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빨리 나서지 못해 마음이 바쁜 날은 화가 났다. 경험상 전화를 한다고 해서 그분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내려오지 않음을 안다. 배달해야 할 물건들을 다 처리하고 내려와 건성으로 ‘미안합니다’ 한 마디면 끝이었다.

아들이 자폐성장애인이라 치료교육비로 거금을 지출하지만 정부의 작은 혜택들로 ‘덕’도 보면서 살고 있다. 그중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하는 건 가장 큰 일상의 ‘특권’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좁은 공간에 주차하기 위해 아들에게 먼저 내리라고 했을 때 어딘가로 뛰어가 보이지 않던 적이 많았다. 아들 찾아 헤매는 일로 신경이 날카로웠던 걸 생각하면 넓은 공간이 얼마나 고마운 사회적 배려인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

예전에 찍은 사진과 이번에 찍은 걸 SNS에 올려 공감을 기대했다. 그냥 신고해서 벌금을 물게 하라는 댓글은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반가웠다. 속상한 나를 이해하는 글들 가운데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냐며 그냥 참으라는 댓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실 내 마음속에는 장애인을 투명 인간이나 아무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주차 구역마저도 무시하는 건가 싶은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택배아저씨를 보면 그냥 짠하다며 넓은 마음으로 배려를 하라는 댓글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배려하라는 건 바로 알겠는데 누군가를 그냥 짠한 마음으로 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들 열심히 사는 모습의 한 부분일 텐데 누군가 그런 자신을 짠하게 본다는 건 동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장애아 부모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았기에 그와 다를 바 없는 시선의 폭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리 말한 사람의 의도는 분명 그게 아님을 잘 알지만 무의식적으로 내가 행하는 일들, 내가 당하는 일이기에 ‘선량한 차별주의’를 떠올렸다.

해당 회사 고객센터에 신고하라는 댓글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회사 차원에서 공지나 교육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족들과 이 얘기를 하면서,

“다음엔 차 안에 음료수를 준비해 뒀다가 그걸 건네며 얘기해 봐야겠어. 그러면 마음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가족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글쎄, 엄마 마음을 잘 받아들일 사람이면 처음부터 그렇게 주차하지 않았을 텐데. 택배 차량이니 다들 이해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면 충고나 음료수로 쉽게 바뀌진 않을 것 같아.”

“이 할매 뭥미? 할 수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이 장애인이라고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 아이를 이해해 달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며 살았던가. 아이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면 나쁜 사람, 좋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좋은 사람, 내게 세상 사람은 딱 두 부류였다. 그 기준은 아들이었다.

내가 원했던 사람들의 이해를 택배기사도 바라는 것일 수 있겠다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한편으론 혹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신고해서 과태료를 물게 된다는 궁색한 변명을 중얼거렸다.

몇 해 전 어느 아파트의 일이 생각났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운 자신의 차량을 누군가가 신고해서, 과태료를 물게 된 주민이 붙인 경고문은 독설이었다. ’장애인씨’로 시작하는 글은, 주차 공간이 없어서 비어있는 곳에 잠시 차를 세웠는데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신고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라’는 비아냥은 섬뜩했다.

장애인 차량 운전자는 신고보다 조금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고 비장애인 운전자는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준법정신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누군가의 지적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이면 좋겠다.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다음엔 피로회복제 하나 건네며 상냥하게 말을 건네 봐야겠다.

“수고 많으세요. 여기 말고 조금 옆으로 주차하셔야 신고 당하지 않아요.”

신고로 협박하는 느낌이지만 진정성 있게 말한다면 잘 전달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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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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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2 years ago

늘 역지사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선생님 글은 따뜻합니다
하지만 저도 가족분들 의견에 동감합니다
계속 참고 봐주는 것만이 상대방을 위하는것이 아니더라구요
구급차라면 모를까 법과 신고제도가 그래서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famina@naver.com'
famina
2 years ago

“수고 많으세요. 여기 말고 조금 옆으로 주차하셔야 신고 당하지 않아요.”

글을읽는데 음성지원되는 느낌~~!

좋은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