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 만들라”… 발달장애인, 여야 정당에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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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후보자등록 마지막 날인 14일,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정당별로 제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더인디고
▲20대 대선 후보자등록 마지막 날인 14일,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정당별로 제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더인디고
  •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해줄 정당과 후보자는 누구?
  • 대선 후보자, 20일까지 책자형 선거공보 제출해야
  • 후보자등록마감일 민주당만 “웹자보 약속”
  • 참정권대응팀, 이달 28일까지 답변 기다릴 것

[더인디고 조성민]

“기본소득 지급, 탈원전 정책 폐기, 주 4일제 도입, 국토 보유세 신설…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이 너무 어려워 이해가 잘 안됩니다. 글씨가 많거나 너무 짧고, 또 어려운 말로 되어 있거나 갑자기 한자 혹은 영어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어떤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 무엇인지 알아야 뽑을 것 아닙니까?”

장애인, 아동, 탈시설 정책 등에 관심이 많다는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20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쉬운 말과 그림 등을 넣어 다양한 정보가 잘 담긴 선거공보물을 제공해달라”고 호소했다.

박 활동가는 제20대 대통령선거 50일을 앞둔 지난달 18일,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 용지를 제공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20대 대선 후보자등록 마지막 날인 14일, 발달장애인들이 참정권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치추진연대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참정권대응팀)’은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정당별로 제작할 것”을 주장했다. ©더인디고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치추진연대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참정권대응팀)’은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정당별로 제작할 것”을 주장했다. ©더인디고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참정권대응팀)’은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를 정당별로 제작할 것”을 주장했다.

“20대 대선,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 제작 및 배포 가능할까?”

▲제20대 대통령선거 주요 사무일정 편집. 자료=선관위 홈페이지
▲제20대 대통령선거 주요 사무일정 편집. 자료=선관위 홈페이지

현행 공직선거법(제65조 제6항)에 따르면 후보자는 후보자등록마감일 이후 점자형 선거공보를 포함한 ‘책자형 선거공보’는 6일까지, ‘전단형 선거공보’는 10일까지 배부할 지역의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규정대로라면 이달 20일과 23일에는 대통령 후보자의 신상과 공약 등이 담긴 선거공보물이 선관위에 도착해야 한다. 문제는 각 정당마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제작한다고 약속하더라도 물리적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설사 제작을 했더라도 법률적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선거공보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과 관련해 현행 공직선거법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제출하되, 책자형 선거공보에 그 내용이 음성·점자 등으로 출력되는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를 표시하는 것만 허용하고 있다. 선관위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 쉬운 선거자료뿐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 영상 QR코드도 마찬가지다.

표를 구하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장애인 참정권 보장엔 관심 없는 정치권

참정권대응팀을 비롯한 장애계가 선거 때마다 모니터링과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진정 및 기자회견, 공직선거법 개정 토론회 등을 지속했지만, 여야 정당과 선관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작년 10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시각·청각·발달·지체장애인 등의 참정권을 두텁게 보장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는 지금까지 진지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선관위도 지난달 26일 장애인단체들과의 간담회에서 ‘그림투표용지 연구용역 검토’와 더불어 ‘장애등록 여부나 유형과 상관없이 선거인 본인이 기표할 수 없어 투표보조를 희망하면 이를 지원하는 것’으로 했다. 그렇다고 선관위가 스스로 했다기보다는 박경인 활동가와 같은 장애인 당사자와 참정권대응팀이 법원에 투표보조에 대한 긴급구제 요청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선관위는 장애인단체의 요구에 따라 2016년 국회의원 선거부터 공직선거법상 시각 또는 신체장애인 이외에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선거지침을 적용했다. 하지만 지난 2021년 4.15 총선 때부터는 사전에 그 어떠한 논의도 없이 슬그머니 삭제해 비판을 사왔다.

“20대 대선,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 배포는 어렵더라도 제작은 가능

선거공보물 등 차별구제소송을 대리하는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그동안 극소수의 정당이나 후보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정당과 후보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자료의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자료 제작을 실천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사진 가운데). ©더인디고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사진 가운데). ©더인디고

김 변호사는 이어 “일찌감치 발달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중요하게 인식한 해외 국가와 정당 등은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기준은 이미 어느 정도 마련돼 있다”면서,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는가 ▲문장이나 단락의 길이가 적당하고 이해하기 쉬운가 ▲전문용어나 약어 등이 포함되어 있는가 ▲단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는가 ▲크고 명확한 글꼴을 사용하고 있는가 등”이라며 해외 사례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영국은 2010년 총선 이후 주요 정당들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easy read manifestos)’을 발간했다. 스웨덴 정부 기관도 평소 선거와 정당들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제공하는 데다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 등 각 정당 또한 자체 홈페이지 및 선거공보를 통해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김 변호사는 “국가가 법적으로 강제하기 전이라도 각 정당에서 충분히 문제의식을 갖고,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선거공보를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발달장애인에게 정당과 공약,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은 정당의 몫이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들은 기자회견 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국민의당, 정의당 등 각 당사 앞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촉구한 데 이어 정당별 당직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 제작여부를 질의했다.

▲참정권대응팀의 정당별 제작요구 질의에 대해 이혜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장애인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웹자보 형식으로 제작할 것”을 약소했다. ©더인디고
▲참정권대응팀의 정당별 제작요구 질의에 대해 이혜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장애인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웹자보 형식으로 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더인디고

이 자리에서 여야 4당 중 유일하게 더불어민주당만 쉬운 선거공보물 제작을 약속했다. 이혜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장애인위원회 운영위원장은 “이미 관련 전문가와 논의를 마쳤다. 다만 자료 형태의 공보물 배포는 법률에 정해져 있고 또 선관위 소관이라 논의가 필요하다”며 “당 차원에서는 웹자보 형식으로 제작, 홈페이지 게재까지는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정권대응팀은 정당별 질의서에 대해 이달 28일까지 회신받기로 했다. 관련 결과는 20대 대선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3월 4일에 공개할 예정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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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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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0c82cce0bd@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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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krino8@gmail.com'
윤정기
2 years ago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참정권대응팀) 단체에서

어제 14시 우리 정의당에도 방문하셨더라구요,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 제작요구 질의서’를,

정의당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인 박환수 장애인선대본부장님이 전달받았고,

우리 정의당은 발달장애인이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앞으로 알기 쉬운 선거자료를 만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부디 이 시대 민주주의국가의 참주인으로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신장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