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합법적 차별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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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어윗의 ‘백인(사진 좌)과 흑인(우)이 쓰는 세면대’. 출처=템스 앤 허드슨
▲엘리엇 어윗의 ‘백인(사진 좌)과 흑인(우)이 쓰는 세면대’. 출처=템스 앤 허드슨
  •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악에 부쳐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할 수 있을까?

‘그렇다’라고 대답한 국가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그것도 법률로서 말이다.

미국은 주법으로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인종분리정책인 짐크로우법(Jim Crow laws)을 시행했다. ‘짐크로우법’이라는 말은 예전에도 사용한 적이 있지만, 1904년 미국 영어 사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짐크로우’라는 이름은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뮤직 코미디를 한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의 1828년 히트곡 ‘점프 짐 크로우’(Jump Jim Crow)에서 유래하는데, 영국에서 이민온 코미디언 토머스 다트머스 대디 라이스(Thomas Dartmouth Daddy Rice)가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으로 분장한 블랙 페이스로 인기를 끌며 미 전역에 알려졌다. 짐크로우는 흑인을 희화화한 캐릭터이며 민스트럴 쇼의 단골 캐릭터가 되었다. 1838년 ‘짐크로우’는 니그로(깜둥이)를 뜻하는 경멸적인 표현이 되었고, 인종분리정책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짐크로우법에 의해 남부 연맹의 모든 공공기관에서 합법적으로 인종을 분리하고 차별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 내 흑인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운동장의 기울어진 쪽이 아니라 운동장 밖에 서게 된 것이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흑인들은 공립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 화장실, 식당, 식수대 등에서 분리되고 격리되었다. 미국 군대에서도 백인과 흑인은 분리됐다. 경제 활동, 주거지 선택 등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로 인해 경제, 교육, 사회 등에서의 불평등이 야기되었다. 합법적인 분리는 대부분 남부에서 이루어졌지만 사실 북부에서도 강제적인 집 계약, 불평등한 대출, 직업 차별 등의 다양한 인종 차별이 존재했다.

하지만,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 사건이 짐크로우법 폐지에 불을 댕긴다. 1951년 미국 캔자스 주 토피카에 살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흑인 소녀 린다 브라운은 집 가까이 있는 학교를 두고 1마일이나 떨어진 흑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걸어서 등교해야 했다. 이에 린다 브라운의 아버지 올리브브라운은 집에서 가까운 백인들만이 다니는 섬너 초등학교로 전학을 신청했으나 교장이 피부색을 이유로 거절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올리브브라운은 토피카 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이윽고 1954년 5월 17일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 토피카 교육위원회를 누르고 브라운의 손을 들어주었다. 평등한 시설과 교육을 제공한다고 해도 인종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판결문에서 흑인 아동을 거부하는 것이 법의 평등한 보호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하는 것임을 명시했다. 당시 대법원장 얼 워런은 “공교육에서 ‘분리하되 평등하면 된다’는 원칙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며 “분리 교육 시설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다”고 못박았다.

최근 한국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짐크로우법을 시행하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 편의증진법은 음식점, 편의점, 약국 등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경우 300㎡(약90평) 이상에 대해서만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그 기준을 50㎡(약15평)로 낮추자는 내용이다.

상당히 획기적인 변화인 것 같지만, 정작 시민들은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하며 평수 기준을 없애 달라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요지부동이다. 개정안에 의하면 2022년 이후 신축·증축·개축하는 건물에만 적용되기에 과거에 영업을 해왔던 곳은 제외되며, 소규모 시설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여건상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례로 편의점의 경우 전국 4만3000여 곳 중 50㎡ 이하 규모인 곳이 약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00곳 중 20곳만 오라는 것인데 이마저도 시행 연도로 인해 담보하기 힘들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1954년 짐크로우법 폐지가 첫걸음을 떼었는데 68여 년이 지난 2022년 한국에서 법률에 따른 분리 정책이 준비되고 있다. 시대를 한참이나 역행하는 것인데 짐크로우법을 도입한 사람들의 영혼이 보건복지부에 빙의되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미국·영국·독일은 규모나 면적에 대한 기준이 없는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별도 기준은 두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건물의 크기, 규격, 준공일과 관계없이 접근성 표준을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적용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아울러 지난 2월 가게 규모를 기준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에 제한을 둔 장애인등편의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법원 1심 판결까지 나온 상황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짐크로우법이 흑인들의 시민권과 사회권을 합법적으로 박탈했듯이 이번 편의증진법 개정안도 마찬가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이 ‘주린 배를 잡고 식당을 찾아 헤맬 것’이고,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을 찾아 헤맬 것’이다.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편의점을 찾아 헤맬 것’이다.

시민들은 ‘헤맴’과 ‘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접근’과 ‘통합’을 원한다. 1954년 5월 17일 미국 연방대법원장 얼 워런은 “분리 교육 시설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다”고 판결했다. 2022년 현재 한국의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68여 년 전 판결을 읽어보고 ‘합법적 차별주의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시민과 권리를 분리하는 합법적 차별을 취소하길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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