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세 번째 삭발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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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9일 오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1박 2일 집중 결의대회에서 부모연대 한 회원이 삭발 후 눈물을 떨구고 있다. /사진제공=사진작가 왕현
▲2022년 4월 19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1박 2일 집중 결의대회에서 부모연대 한 회원이 삭발 후 눈물을 떨구고 있다. ©사진작가 왕현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엄마, 잘하고 오이소. 근데 우리 엄마 벌써 세 번이나 삭발…”

딸은 안타까워하며 말끝을 흐린 반면 남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라고 말 좀 해 보쇼.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어둔 표정을…”

채근하는 나를 보지도 않고 남편이 말했다.

“한두 번으로 끝났으면 좋은데 또 하니까 마음이 아프네. 막을 수 없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노.”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그러나 내가 참여하기 이전에 교육권 투쟁,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 권리 쟁취를 위한 장애부모들의 삭발 투쟁은 여러 번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라고 믿지만 돌아보면 미미한 발자국이라 힘든 세상 등지는 장애가족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슬픈 오늘을 살고 있다.

삭발 투쟁하는 날 아침, 6년 전 처음 삭발할 때 당시 20대 중반의 딸이 내게 준 편지를 SNS에 포스팅하면서 울지 않았다.

“……집 열쇠를 목에 걸고 엄마 없는 빈집에 혼자 들어와 밥을 챙겨 먹고 숙제하다가 왜 나는 남과 다른 동생을 두게 되었나 생각한 적 많았어요.
동생에게 뺏긴 엄마였지만 나보다 엄마가 더 필요한 동생이라 아무 말 않고 저는 저 혼자 아이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걸 엄마가 알아줘서 고마웠어요.

친구들이 동생과 싸운 이야기며 동생과 게임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동생도 대화가 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느 때부턴가 마론 인형을 동생 삼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본 엄마의 슬픈 표정을 아직도 기억해요.

중학교 때 우리 반 지이가 지적장애가 있어 도움친구를 자청했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러셨죠. 집에서 동생 보는 것도 힘들 텐데 학교에서까지 장애친구를 돌보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요. 엄마, 그 때 제 대답 기억하시죠?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나중에 어떤 누군가가 하진이를 도울 것 같아 하는 것이라구요. 엄마는 저를 끌어안고 한참을 우셨지요. 그 눈물은 내가 하진이를 잘 돌보고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한 삶을 살게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했어요. 엄마 글로 만들어진 동영상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는 문구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엄마! 하진이 미래에 목숨 걸지 마세요. 제가 하진이 잘 돌볼게요. 그동안 하진이 돌보시느라 엄마 인생 다 던졌잖아요. 이제 쉬실 나이에 아직도 부족한 자식 때문에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시청 앞 농성장에서 애쓰시는 걸 보면 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렇지만 지금의 고단함으로 하진이 미래가 밝아진다면 엄마, 말리진 않을게요…….”

하지만 댓글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우리 사회와 비장애 형제의 속내를 보면서 많은 분이 공감하며 응원해 주었다. 지하철 이동권 투쟁하는 장애인들에게 혐오 발언과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과격한 투쟁을 멈추라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면 차별과 배제가 없는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될 것 같았다.

44년생의 조부가 손자를 위해서, 20대의 청년이 누나를 위해서, 온 가족이 모두 참여한 경우도 많은 2022년 4월 19일 삭발 투쟁. 556명의 결의문을 보면서 장애가족의 지난한 삶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와 복지 정책 부재의 국가가 야속하다.

삭발할 때의 근엄함과 달리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물기가 촉촉한 눈으로 서로의 민머리를 보며 아까보다 더 예쁘다는 우리들의 위안은 차라리 아프다. 평범한 시민들인 우리가 ‘여기 사람이 있어요, 같이 살게 돌아 봐 주세요’를 외쳐야 눈곱만큼의 변화가 있으니 일상의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발달장애국가책임제”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하는 집회를 전하는 기사 댓글을 보면 끔찍하다. ‘네가 낳은 아이를 왜 국가가 책임지느냐’부터 ‘아이 국가에 맡기고 너는 뭐 할 거냐’는 비아냥이 도를 넘었다.

모든 장애인의 24시간을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다. 장애자녀를 가족에게만 책임지게 하다 보니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다. 한부모 가족으로 엄마가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거나 부모 사후 혼자 남은 장애인은 24시간 지원이 절실하다. 다른 누군가는 낮활동 8시간만 보장된다면 가족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은 아무리 큰일이라도 가볍게 생각한다. 내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 번만 생각해 준다면 우리의 노력이 덜 외롭고 좋은 세상이 좀 더 빨리 올 것 같다.

윗옷을 입을 때마다 습관처럼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목덜미를 손으로 훑는다. 귀 뒤로 머리 넘기는 시늉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멈출 것 같다.

삭발자들이 내놓은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밝혀 줄 등불이 되길 바란다. 엄마를 빤히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민머리에 머물고 있음을 느낀다.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도 아들이 바라보는 그 마음이길 빈다.

아들을 위해 세 번째 삭발한 아직 까끌한 민머리를 만지며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날을 기대하는 나는 자폐인의 엄마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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