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장애는 극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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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가 혼자서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김소하 작가
▲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가 혼자서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김소하 작가
  • 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Michel Petrucciani)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몸무게 30 kg’, ‘키 90 cm’, ‘골형성부전증’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바로 장애인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나열한 신체 크기와 재즈 피아니스트를 연결 지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장애 극복’, ‘작은 거인’이라는 단어가 연상될 것이다. “장애를 극복하고 한계를 뛰어넘는다”라는 언론 매체의 수사가 떠오를 것이다.

‘장애 극복’이라는 말에 반대하며, 증거로 재즈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와 그의 연주 앨범을 제시한다. 장애를 극복하고 뛰어넘어 연주한 것이 아니라 장애와 함께 연주한 것이다.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설적인 연주자가 된 것이 아니라 전설적인 연주자가 장애를 가진 것이다. 재즈 연주자로서 뜨겁게 리듬 위를 누빈 그를 소개하고 싶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에반스를 끄집어내는 데 노력합니다. 칙 코리아, 키스 자렛, 폴 블레이, 스티브 쿤 등 모든 사람이 에반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미셸 페트루치아니 –

미셸 페트루치아니는 1962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선천성 장애로 인해 키 90 cm, 몸무게 30 kg였다. 일생을 살면서 골절을 자주 입기도 했다. 피아노보다 작은 신체로 인해 목과 가슴 부위에 피아노 건반이 걸쳐졌고, 부상 위험으로 인해 피아노에 앉은 채 무대로 옮겨졌다. 피아노 소리에 변형을 주는 페달을 사용할 수 없어 특수 장치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장애와 연주 기술과 능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재즈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에게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다. 음악적 재능이 무척 뛰어났는데 아버지의 음반을 듣고 바로 연주할 정도였다. 키스 자렛(Keith Jarrett)과 빌 에반스(Bill Evans) 등의 연주자를 존경하여 재즈 피아노 연주에 도전했고, 13살 때 첫 콘서트 이후 파리에서 이름을 알려 나갔다.

▲1985년 2월 뉴욕 ‘타운 홀’ (town hall) 공연. 1939년 설립 이래 재즈 황금기를 이끌었던 블루 노트 레코드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 무대에 색소포니스트 찰스 로이드가 누군가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동료 연주자에게 안긴 남자는 고작 36개월 아이 정도의 키를 지닌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였다. ⓒ찰스 로이드 쿼텟’(Charles Lloyd New Quartet)의 <A Night in Copenhagen> (1983) 앨범 표지
▲1985년 2월 뉴욕 ‘타운 홀’ (town hall) 공연. 1939년 설립 이래 재즈 황금기를 이끌었던 블루 노트 레코드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 무대에 색소포니스트 찰스 로이드가 누군가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동료 연주자에게 안긴 남자는 고작 36개월 아이 정도의 키를 지닌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였다. ⓒ찰스 로이드 쿼텟’(Charles Lloyd New Quartet)의 (1983) 앨범 표지

1982년 미국에 건너가 찰스 로이드(색소폰 연주자)를 만난 이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찰스 로이드의 제안으로 쿼텟에 합류한 페트루치아니는 세계의 다양한 재즈 공연 현장에서 호평받았다.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웨인 쇼터(Wayne Shorter) 등 당대 수많은 명연주자와 무대에 섰다.

이후 1982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1984년 재즈 전문지 <다운비트> ‘올해의 뮤지션’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한 영광 속에서도 수명이 6년 정도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피아노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의사의 말과 달리 9년을 더 살며 재즈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는 매년 100회 이상의 공연을 했고 1994년 프랑스는 이런 그에게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기에 이른다.

그는 듀크 엘링턴을 무척 좋아했는데 엘링턴의 대표곡인 ‘Caravan’, ‘Take The A Train’과 같은 곡들을 즐겨 연주한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1993년에는 아예 듀크 엘링턴을 주제로 한 앨범 <Promenade With Duke>을 발매했다.

누구보다 뜨겁게 연주에 열정을 다했던 그도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1999년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폐병에 걸린 것이다. 그의 짧고 굵은 삶은 37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의 생애는 <미셸 페트루치아니에게 보내는 편지>(1983), <미셸 페트루치아니와의 논스톱 여행>(1995),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2011) 등 3편의 다큐멘터리로 남았다.

가장 최근에 제작된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는 페트루치아니와 같은 장애와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아 기타리스트가 된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페트루치아니(Alexandre Petrucciani)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거인이 아닌 재즈 거장의 삶과 생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장애를 극복하고 뛰어넘은 것이 아니라 장애와 함께 살아낸 그의 연주를 라이브로 보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다.

Michel Petrucciani Trio: Petrucciani – September Second (1998) – YouTube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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