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타자화(他者化)’의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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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집단을 ‘타자’로 구별짓고 ‘낭만화’로 덧칠하려는 집단 정서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 더인디고 편집
▲특정 집단을 ‘타자’로 구별짓고 ‘낭만화’로 덧칠하려는 집단 정서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워낙 늦된 탓에 내가 장애를 가진 몸이어서 다른 아이들과 구분된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3학년 때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각 교실에는 조개탄 난로로 난방을 했는데 아이들이 순번을 정해 창고에서 교실까지 조개탄을 날라야 했다. 내 차례가 돌아왔지만 할 수 없었고, 나와 함께 당번이었던 아이는 ‘다리가 아픈 친구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임선생의 매질을 당했다. 이후 아이는 나를 ‘다리병신’으로 불렀고, 군인은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다리병신’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은 나는 반 아이들과 선생에게 노골적으로 ‘타자화’되었다.

‘타인의 기원’을 통해 “세상의 모든 차별은 상대를 타자화함으로써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미국의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가 자신과 형제들에게 무심코 내뱉은 “섞였다”는 한 마디가 자신이 타자화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했던 최초의 기억이라고 말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이면서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여성작가이기도 한 토니 모리슨은 인간(백인)은 같은 인간(흑인)을 타자화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모습만을 부각해 왔다고 비판한다. 타자화는 급기야 ‘노예제도’라는 반인륜적 행위를 문학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도구를 통해 ‘낭만화’시킴으로써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화로 잘 알려진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선한 노예와 친절한 주인을 등장시켜 기독교적 자비와 용서를 인종 간의 화합의 소중한 가치로 묘사해 백인에 의한 흑인 통제를 낭만화했다는 점을 토니 모리슨은 비판하고 있다. 노예제도 체제에서 서로에게 무해하지 않았다는 논리는 결국 노예제도를 무균 상태로 만들어 흑인 통제의 정당화에 복무한다.

달리 얘기하자면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인 우영우가 주변 인물들과 함께 엮어내는 판타지다. 우영우가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직장동료들과 무난하게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출중한 변호사로서의 능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변의 누구에게도 ‘무해한 존재’란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의 무해성은 ‘봄날의 햇살’ 같은 주변 인물들에 의해 조작되었고 부각될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사를 대하는 태도나 의뢰인과의 면담에서 어김없이 드러내는 소위 ‘버르장머리 없음’은 능력있고, 무해하며, 게다가 작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우영우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체계를 무균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영우에게 환호한다. 아프고 불편하고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상한 존재인 우영우의 어눌한 말투를 따라 하고 종종걸음을 흉내 내거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은 속이 훤히 보이는 김밥을 선호한다고 단언한다. 이제 우영우를 아는 사람들은 장애-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한정적이기는 하지만-를 이해하게 되었다. 15년 동안 장애인식개선교육으로도 해내지 못한 숙원을 우영우는 불과 한 달 만에 해낸 셈이다. 그런데 며칠 전 SNS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성인 아들과 대한항공 항공기에 탔다가, 기장으로부터 승객 안전을 이유로 이륙 전 내릴 것을 요구받은 사연이 논란이 되었다. 갑론을박이 일었지만, 장애를 가진 승객의 위험한 행동 탓이니 항공 안전을 위한 정당한 조치였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 장애를 가진 승객은 ‘몸무게가 100킬로에 키가 180센티가 넘는 우람한 체구’를 가진, 가족조차 ‘다룰 수 없는 존재’이며 승무원들의 제지에도 몇 차례나 탑승구를 오가는 등 다른 승객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던 상황인 만큼 항공사의 조치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위험하다는 판단과 그를 항공기에서 내리게 한 조치까지 대한항공은 그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나 장애 특성이 반영된 대응 지침도 없이 기장의 판단만으로 결정했다.
그 승객은 정말 항공기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존재였을까?

상상해보자. 기장의 판단 기저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이 우영우라는 가상 인물과 겹쳐 남아있었다면 그 승객이 무해하지 않은 존재라는 기장의 믿음은 옳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 모두가 우영우처럼 어눌한 말투에 종종걸음을 걷고 작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며 게다가 텐트럼이나 멜트다운이 와도 포옹 한 번으로 바로 안정을 되찾는 무해한 존재로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이해했으므로 기장의 판단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내에서 제공한 술을 마시고 비틀거렸다고 해서 승객을 항공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듯 장애의 특성적 행동만으로 위험한 행동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영우의 왜곡된 장애 재현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의 존재를 위험 상황이라고 판단한 항공사 대처를 시시콜콜 따지며 징징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저 토니 모리슨의 지적처럼 특정 집단을 ‘타자’로 구분 짓고 ‘낭만화’를 덧씌워 구별 짓기의 잣대로 삼으려는 집단 정서가 개인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좀먹고 있는지 조곤조곤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쓸데없는 걱정에 구구절절 글질까지 하는 이유는 더위 탓일 테다. 오늘도 덥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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