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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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 저수지 연꽃 ⓒ전윤선
▲고구 저수지 연꽃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살갗에 와 닿는 아침 공기가 서늘하다. 귀뚜라미 소리는 커지고 매미 소리는 아득해진다. 무뎌진 여름과 꽃들은 이별 중이다. 연꽃, 해바라기는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색을 바꿔 가니 가을이 걸음을 재촉한다. 하늘도, 수풀도, 해그림자도 가을에 물들고 호수에도 가을이 깃든다.

난정 호수로 가는 거친 길목에 잘생긴 데크로가 발길을 안내한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여러 생각들이 호수에서 잠긴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교동도는 여행의 발견이다. 교동도는 강화 부속 섬이다. 수도권이어서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적 거리는 먼 곳이다. 심적인 거리가 먼 것은 비무장 지대와 가까워서이기도 하다. 민통선 안에 있는 교동도는 출입 시 신분 확인은 필수이고 섬 입구 교동교에서 군인의 안내에 따라서 출입증을 받아 들어간다. 교동교가 연결되면서 차동차로 이동이 편리해졌지만 섬인지 육지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교동도는 요맘때 해바라기 꽃밭은 장관이다. 교동도 난정 저수지 해바라기 꽃밭은 북한과 거리는 2.6 ㎞에 불과한 접경지역으로 군사시설과 문화재 보호로 개발이 제한된 곳이다. 서해와 한강, 예성강이 만나는 생태계의 보고지만 어업 활동이 제한돼 있어 오랜 세월 시간이 멈춘 채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해바라기밭에서는 바다 건너 북한의 연백평야가 보이고 연백평야를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 풍경은 감탄사만 연발하게 한다. 예로부터 쌀 맛 좋은 곡창지대로 소문이 자자했던 교동과 연백 주민들은 농번기 일손 품앗이를 위해서 배를 타고 자유롭게 왕래하던 가까운 이웃이었다. 이제는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어서 더 애틋하다.

오랜 시간 적막하기만 했던 저수지 주변으로 몇 년 전부터 해바라기밭이 조성됐고 이때부터 난정 저수지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난정리 주민들이 직접 해바라기를 심고 가꿔서 저수지 주변을 노랗게 물들였다. 품앗이하던 그 시절처럼. 남북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소식을 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바라기꽃을 열심히 가꾸고 있다. 소문은 금세 뭍으로 퍼지면서 교동도를 찾는 여행객이 늘기 시작했다. 해바라기밭은 휠체어 이용인도 접근 가능하다. 꽃밭 사이로 잘 다져진 평탄한 흙길은 휠체어로 걸어도 흙 밟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기분 좋아진다.

▲해바라기밭 조형물 ⓒ전윤선
▲해바라기밭 조형물 ⓒ전윤선

해바라기꽃과 어울리는 조형물도 설치돼 있어 카메라만 가져다 대면 작품이 만들어진다. 거대한 액자는 해바라기 덕분에 더 심쿵해진다. 해바라기는 금전 운을 상징해 집들이 선물용으로 종종 활용된다. 해바라기밭에서 근사한 사진을 찍어 두면 선물용으로 좋은 사진이 만들어진다. “당신만 바라볼게요.” 조형물은 꽃다발을 전하는 남성의 마음이 전해진다. 조형물 앞에서 꽃다발을 받는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찍으며 해바라기 꽃밭에서의 추억을 저장해 본다. 해바라기가 해만 쫓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의 해바라기꽃은 해를 등지고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어 생소하지만, 뒤태 만큼은 근사하다.

해바라기를 뒤로하고 교동 제비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교통 제비집은 제비를 소재로 한 작은 전시관이다. 1950년 혼돈의 시기에 교동도로 온 실향민의 아픔을 제비가 위로하는 곳이다. 고향의 흙을 물고 온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지으면 북녘 고향 땅에 계시는 가족의 얼굴이 떠올라 애달프고 반갑기도 하다. 안방과 거실에서도 만나는 제비집은 오랜 세월 교통 주민들에게는 기쁨과 위안이 되어준다. 제비집은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교동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비집 전시관은 교동도의 스토리와 미래가치를 조명하고 지역주민의 경제교육정보 문화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제비 조형물 ⓒ전윤선
▲제비 조형물 ⓒ전윤선

전시관 앞 제비는 전깃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형물이지만 살아 있는 제비 같다. 전시관 담벼락에도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길러내고 있다. 전시관 내부는 작고 아담하다. 카페, 교동앨범, 신문, 갤러리, 교동 스튜디오까지. 추억의 사진관과 옛날 교복을 대여해 입고 흑백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면 레트로 여행지로 손색없다.

전시관을 뒤로하고 새롭게 단장을 마친 대룡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룡시장의 변화는 눈에 띈다. 매끄러운 노면에 카페나 공방도 늘었다. 주말이면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편의시설도 늘었고 손님 맞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래된 상점과 이발관, 약국, 다방, 철물점, 점방은 그대로다.

▲대룡시장 ⓒ전윤선
▲대룡시장 ⓒ전윤선

대룡시장은 아주 작은 전통 시장이다. 한국전쟁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온 주민들이 한강 하구가 분단선이 되어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떠 만든 골목 시장이 대룡시장이다. 분단 이후 교동도의 중심지이었으며 지금은 실향민 중 나이 지긋한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의 규모도 줄었다. 그러다가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레트로 영화 세트장 같은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진작가들의 출사지가 되어 관광명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룡시장의 60년대 풍경은 KBS 1박2일 예능프로그램 전파를 타고 더 유명해졌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주민들이 농사지은 채소를 착한 가격에 팔고 있다. 로컬 판매대는 물건만 있고 주인은 보이질 않는 곳도 더러 있다. 손님은 알아서 물건값을 바구니에 담아놓고 물건은 양심껏 가져간다.

▲교동 이발관 ⓒ전윤선
▲교동 이발관 ⓒ전윤선

대룡시장엔 오래된 이발소도 있다. 한 직종에서 60년 넘게 일한다는 것은 기술을 넘어 예술이고 달인이며 명인이다. 교통 이발관이 그렇다. 교동 이발사는 황해도 사람으로 한국 전쟁 때 교동도로 피난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다. 이제나저제나 통일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한평생 교동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며 살았다. 이발소 안은 1960년대 그대로 보존돼 있어 이발관을 찾는 손님들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이발 장비도 옛것 그대로 사용한다. 머리 감을 때 쓰는 물 조리는 보는 것만으로 추억이 돋는다. 여행객 중 교동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으려 일부러 온다는 사람도 많다. 이발관과 함께 늙어가는 이발사는 한평생 기다려도 고향에 갈 수 없는 현실에 마음 아파한다. 이발관 처마에도 제비집이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는 고향 땅 흙을 물고와 집을 집고 새끼를 키워내며 사는데 사람만이 고향에 갈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이 원망스럽다고 한다.

대룡시장의 또 다른 명물은 오래된 교동 다방이다. 다방 안 인테리어도 60년대에 머물러 있어 근현대사 역사 여행지로 꼭 한번 둘러보면 좋은 곳이다. 다만, 다방 안이 워낙 좁아 휠체어 사용인은 들어갈 수 없다. 다방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차를 못 먹는 건 아니다. 다방 앞 야외 테이블에 쌍화차를 배달해 주기 때문이다. 계란 동동 쌍화차는 추억의 맛을 기억하고 소환한다.

▲교동다방과 시계방 ⓒ전윤선
▲교동다방과 시계방 ⓒ전윤선

시장골목은 오래된 시계방도 있다. 황세환 시계방은 주인을 잃었지만 시계명장의 삶의 이야기는 대룡시장을 찾는 여행객에게 장인 정신을 전해준다. 황세환 명장은 시계수리 기술을 배우러 교동도를 떠난 5년을 제외하고는 평생 교동도에 살았다. 지금의 시계방 점포는 1969년 쌀 열 가마니를 주고 산 곳이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매일 아침 먼저 하는 일은 시계에 밥을 주는 일이었다. 태엽을 감아야 시계는 시간마다 종소리를 내며 온종일 일한다. 당시엔 시계방을 찾는 사람이 많아 먹고사는 데는 문제 없던 시절이었다. 평생을 시계수리 작업을 했던 명장은 떠나고 없지만 주인의 손을 타던 시계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의 나이키 고무신 ⓒ전윤선
▲조선의 나이키 고무신 ⓒ전윤선

조선의 나이키는 고무신이지 말입니다. 신발가게 좌판에 작고 앙증맞은 고무신과 털신이 ‘나 좀 데려가시오.’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예쁘다, 귀엽다, 앙증맞다, 깜찍하다, 말만 마시고 추억의 고무신 싸게 사가라는 주인장의 목청이 쩌렁쩌렁하다. 주인장은 각 지역의 사투리로 고무신을 사가라고도 한다. 지역의 사투리는 교동을 찾은 손님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간택을 기다리던 고무신은 주인을 따라 대룡시장을 떠나 각 지역으로 흩어진다.

발길을 돌려 고구 저수지로 향했다. 고구 저수지는 대룡시장 근처에 있다. 연꽃이 한창인 고구 저수지에 낚시꾼들은 세월을 낚고 연꽃은 햇볕을 낚는다. 저수지 둘레는 평탄한 데크로가 있어 보행에 자유롭다. 데크로는 저수지를 가로지르고 정 가운데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2층 정자가 있다. 전망대는 계단이어서 휠체어 탄 여행객은 오를 수 없지만 연꽃이 무르익는 것만으로도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을 고구 저수지에서 만났다.

우리는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계절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생의 계절은 순서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떤 말보다 자연이 내어주는 너른 품은 큰 위로로 다가온다. 익숙하지만 지나간 시간에 낯선 풍경은 애쓰지 않아도 여행자를 따듯하게 안아준다. 교동도엔 60년대 영화가 필름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제비전시관 앞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제비전시관 앞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인천장콜: 1577-0320 김포장콜: 1899-2008
  • 접근가능한 식당: 대룡시장 다수
  • 접근 가능한 화장실: 제비 전시관 앞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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