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의 TheWorldGO] 선택?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과 국정감사

0
143
▲한 아이가 교차로에서 방향을 잃은 듯 서 있다. ©픽사베이
▲한 아이가 교차로에서 방향을 잃은 듯 서 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2020년 12월엔 이런 생각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크리스마스를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던 때였다.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생활에 대해 국내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탈시설 정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을 기대했다. 법이 발의된 이후 벚꽃과 낙엽이 지기를 두 번, 다시 겨울이 된 지금 탈시설 의제는 그 자리 그대로 멈춰버린 듯하다.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소속 몇몇 국회의원들은 보건복지부의 탈시설 정책을 매우 우려하였다.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시설을 ‘선택’하는 장애인과 가족도 있으므로 탈시설 정책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 결과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응답자(59.2%)가, 나가고 싶다는 응답자(33.5%)에 비해 많은데, 시설 거주를 희망하는 장애인은 시설에서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 아침, 나는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선택’했다. 집에서 직장까지 도보로 15분, 버스로 5분이 걸린다. 매일 아침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버스를 이용할지, 걸어갈지를 선택한다. 하지만 어쩌다 늦잠을 자는 날이면 지각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버스를 탄다. 나는 이때의 상황을 “내가 버스를 ‘선택’했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쿠팡 노동자의 과로로 인한 사망을 두고 노동자가 초과근무를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사측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용직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일을 하도록 억압한 사회가 그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성매매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여성의 선택이라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빈곤, 성차별, 교육 기회 박탈이 다른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앗아간 것이다. 역시 그녀에게도 선택권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리가 진정한 ‘선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으려면, 모든 선택지를 고르는데 동등한 기회가 보장된 환경이어야 한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논의된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은 UN 장애인권리위원회가 2022년 9월 발표한 ‘긴급상황을 포함한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시설이 장애인의 보호조치 혹은 선택으로 고려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8문단),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시설 수용 생존자, 및 시설 수용 위험이 큰 사람들이 탈시설 과정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과 정보를 접근가능한 형식으로 제공해야 한다’(35문단)고 명시한다.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지침은 37문단이다.

37.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살 수 없고, 시설에 남아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차별이다. 의사 결정에 대한 권리를 부정당해온 이들은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을 시작하더라도 초반에는 이러한 생활환경이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시설은 그들이 아는 유일한 생활환경일 수 있다. 당사국은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개인적 성장(발달)을 제한해온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장애인의 취약점또는 약함이 탈시설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우리는 교묘한 착시에 속지 않아야 한다. 시설 거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응답한 사람에게는 지역사회 지원에 대한 정보가 접근가능하게 제공되지 않았거나, 시설이 그들이 아는 생활환경의 전부였을 수 있다. 그래서 시설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시설을 ‘선택’했다는 사람들을 걱정하며, 탈시설 정책 추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자립생활이 가능한 지역사회를 구축한 후에도, 시설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시설이 필요 없는 사회에서 시설을 선택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다.

*가이드라인은 한국장애포럼(KDF),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공동번역하였다. 공식번역본은 아니므로 영문본 참고에 활용하길 바란다. https://readmore.do/vWt7

[더인디고 THE 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승인
알림
662bbe8d2b753@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