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명절 단상

0
177
▲묘비 앞에 꽃이 놓여 있다. ©픽사베이
▲묘비 앞에 꽃이 놓여 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세 번의 설날이 무심하게 지나갔다. 튀김 한 조각, 떡 한 입 못 먹어본 명절이 두 번의 추석을 포함하여 다섯 번 지나간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멈췄던 고향 방문이 올해부터 친척들의 합의로 멈춤이 이어졌다.

언제부턴가 칠십 중반의 큰형님(동서)이 40여 년 동안 도맡아서 하던 차례와 제사 준비가 벅차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는 동서들이 각자 음식을 맡아 차례를 지내긴 했지만 미리 준비해야 할 제수를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오롯이 큰형님 몫이었다.

지난달 시아버지 기일에 다섯 형제 부부가 모여 어려운 결정을 했다. 부모님 기제사만 지내고 명절 차례는 하지 않는 걸로. 대신 명절쯤에 형제들이 모여 추모 공원에서 차례를 지내고 다 같이 밥이라도 먹자 했더니 다들 찬성했다. 큰형님의 어려움을 투정으로만 받아넘겼던 큰 시숙은 막내인 남편의 의견이 모두의 생각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후손들의 처사에 조상님의 이해를 바랐다.

구정 열흘 전쯤 시가 식구들이 모였다. 한겨울답지 않게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가족묘 앞에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얼굴에 물기 가득 머금고 잔을 따르는 시숙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약식 차례가 성에 차지 않아 빗물을 빙자하여 눈물을 흘리는 걸로 느껴졌다.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죄송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렇게 약식 차례를 지낸 후 식사하는 자리에서 결국 일이 터졌다. 차례를 생략하기로 한 것에 대해 그러자고 해놓고도 정작 다가올 설 명절을 그냥 보내는 게 못내 아쉬웠던 큰 시숙이 술의 힘을 빌려 폭탄 발언을 했다.

“조상님께 새해 인사를 안 드리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내가 시장에서 제수를 준비해서 명절 당일 간단하게나마 상을 차릴 테니 아우님들 와서 같이 절 올리자.”

남편을 손아귀에 넣고 꼼짝 못 하게 하는 유별난 둘째 동서가 화를 내며 ‘우린 안 보낼 겁니다’라 했고 큰동서는 본인 손으로 밥 한 그릇 못 챙겨 먹는 사람이 제수를 준비하고 상을 차린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에 화가 나서 ‘그러면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인데 나는 그리 못한다’고 하니 분위기는 싸해졌고 시숙들은 말이 없었다.

식당을 나오니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멈춰 있었다. 둘째네 가족은 휑하니 먼저 가버렸고 나머지 형제들이 이런저런 얘길하면서 큰 시숙의 의견을 다시 언급했다. 그래도 형제들이 결정한 걸 혼자 그리 바꾸면 안 된다는 동서들과 그렇게라도 안 하면 조상 뵐 면목 없다는 시숙은 울먹이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갑자기 차례 안 지내면 당신 서운할 거 같아서 설날 아침에 누구든 오면 떡국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소. 당신이 차례 지낸다고 움직이면 내가 옆에서 보고만 있겠소? 같이 할 수밖에 없고 그럴 거면 음식을 해서 상을 차려야지 어찌 사다가 하겠소?”

큰동서의 말에 시숙은 대꾸하지 않았고 유난히 착한 셋째 동서가 말을 받았다.

“행님, 그라믄 우리라도 갈끼예. 아주버님이 너무 서운하신 거 같네예.”

나도 남편이 원하면 혼자라도 참석하라고 했지만 남편은 그럴 마음 없다고 했다. ‘우리 식구 넷이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며 세상 모든 것이 가족 중심인 남편다운 대답이었다.

그렇게 구정 전 고향 방문은 약간의 소동으로 끝났고 설 당일에 장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얘기와 함께 큰집의 분위기를 전해 주었다. 조촐하게 떡국 나누며 장조카인 아들의 말에 시숙은 고갤 끄덕였다고 한다.

“아빠, 삼촌하고 숙모들이 우리 엄마 생각해서 내린 결정인데 정작 아빠가 그러시면 안 되죠. 아빠가 먼저 내려야 할 결정이었는데 엄마 생각 안 하는 아빠가 저는 야속합니다.”

없는 집안의 맏이지만 권위는 잡고 싶었던 걸까? 아들 말에 또 눈물을 보이며 조상 타령했을 시숙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시가의 명절은 이제 일주일 전 만나서 약식으로 지내는 차례와 형제들 모여 밥 먹는 거로 확실하게 결정이 났다. 이번 설에 아무 준비 안 하니까 너무 편하고 좋더라는 큰동서의 밝은 얼굴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즐기는 명절은 이제 막을 내렸다.

친정과 시가가 부산에 있는 나는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게 참 좋았다. 시가의 불편함은 잠깐이고 친정 식구들과의 즐거움은 내 삶의 활력소였기 때문이다. 부모님 다 돌아가셔서 사실 구심점을 잃은 것 같지만 자매들과의 끈끈한 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명절에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기쁨이었는데 이젠 집에서 우리 가족만이 즐기는 명절도 나름 편하고 좋다. 올해는 집밥 메뉴를 짜고 윷놀이와 화투를 하며 더 재밌게 보냈다. 상황 되는대로 내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이야말로 슬기로운 명절나기라 생각한다.

이삼십 년 전에는 고향 가는 길이 장관이었다. 고속도로는 지체와 정체가 당연하였고 때로는 주차장으로 변신하여 운전자들이 밖으로 나와 몸을 풀었다. 엉덩이를 까고 소변보는 아이의 모습은 앙증맞고 귀여웠다. 하늘에는 취재 나온 헬리콥터들이 배회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했고 생판 모르는 운전자들과 웃음을 교환하기도 했다. 명절에 고향 가는 사람보다 여행가는 이들이 늘었고 여기저기 새 고속도로가 생겨 예전의 그런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고향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 대열에서 빠져나온 우리 가족이 살짝 아쉽기도 하다.

명절 단상에 빠지다 보니 돌아가신 부모님이 무척이나 그립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승인
알림
66395a40e841d@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