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영화 ‘CODA’에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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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 머리 한 소녀를 세 사람이 등 뒤에서 안고 있다. ⓒ김소하 작가
▲파마 머리 한 소녀를 세 사람이 등 뒤에서 안고 있다.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2021년 8월 31일 개봉한 영화 <코다>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라는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설정이나 캐릭터의 모습은 변화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와 감동을 전해주는 전개는 크게 다르게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음악적으로 <코다>에서 등장한 노래와 음악들이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는데, 아마도 <라라랜드>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마리우스 드 브리스’와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닉 백스터’의 음악적 감성이 잘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제목인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앞 글자를 딴 약자인데, 청각 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를 뜻한다. 이들은 음성 언어보다 수어(手語)를 먼저 익히며 어렸을 때부터 수어를 통해 부모와 의사소통한다. 청각 장애인 특유의 문화인 농문화와 비장애인의 문화인 청문화에 모두 익숙해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 고등학생 루비는 농인인 아빠, 엄마, 오빠 레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루비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통역사 역할을 자처했다. 어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빠와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어부나 조합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엄마와 아빠가 병원에 갔을 땐 10대 소녀가 전달하기 부끄러운 비뇨기적 진단과 처방을 대신 전달해주기도 한다. 루비에게 당연한 일상이지만, 그녀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그러한 삶 속에서 루비의 유일한 해방구는 노래였다. 조업을 위해 바다에 나갔을 때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등하굣길 자전거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저렴한 가격에 LP판을 구매하는 것도 루비에게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특별활동을 정하는 날이 왔다. 남몰래 짝사랑하던 마일스가 합창부에 가입한 것을 알게 된 그녀, 역시 합창부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음악 선생님에게 코치를 받으며 점차 노래를 통해 꿈을 꾼다.

농인과 가족이 되어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간에 의사소통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지만, 문제는 수어와 음성 언어를 모두 사용하는 루비가 가족과 사회를 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가족을 바보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있을 때도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들을 수 없기에 소음의 정도를 알지 못했다. 루비의 입장에서 너무 시끄러워서 숙제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려고 하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라는 이유로 제지당했다. 농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이중 정체성 속에서 그녀는 외로워져 갔다.

10대 소녀에게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이었지만, 루비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음악이었다.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을 통해 음악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자유로웠고,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와중 루비 없이 조업에 나선 아버지와 오빠가 해양경찰이 보낸 무전을 받지 못해 조업 금지 조치를 받게 된다. 음성 언어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타지 않으면 앞으로 조업을 할 수 없다는 내용도 함께 통보받았다. 결국 음성 언어와 수어를 연결 지을 수 있는 루비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된 것이며, 그녀도 음악을 포기한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오빠 레오가 루비의 꿈을 응원하며 루비 개인의 삶을 걱정한다. 그리고 가족은 가족의 힘으로 살아내야 하고 그 삶을 루비가 영원히 함께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각자 살아내야 할 삶과 인생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레오가 루비 편에 서서 그녀의 상황을 대변하자 부모님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고 결국 음악을 선택하는 루비의 결정을 존중한다. 마침내 부모님들은 학교 음악회에 가고 마일스와 듀엣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감동한다. 특히 노래에 귀 기울이는 청중의 표정을 보며 목소리의 힘을 이해한다.

음악회를 끝낸 그날 밤, 아버지는 루비의 목에 손을 대고 루비는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다.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 속에서 루비의 어깨에 숨겨진 날개를 느낀다.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자 하는 꿈을 느끼게 된다. 이제 그들은 그들 각자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가족들은 루비가 그동안 짊어졌을 짐을 나누고, 스스로 사람들과 부딪히며 어울렸다. 자신이 없으면 가족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지레 겁을 먹었던 루비도 자신의 미래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는 2015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미국 리메이크작이다. 당시 영화가 개봉했을 때 따뜻한 감동을 했지만, 이번 영화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꿈’, ‘희망’, ‘가족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사소통 시스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 영화에서 루비가 자처한 통역사 역할을 ‘수어통역사’라는 전문가가 했다면 어땠을까?”였다.

의사소통의 사회적 어려움을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지원했다면, 더 빨리 각자의 인생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족 간의 사랑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수어통역사는 없었다.

“의사의 비뇨기적 병명을 루비가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고 전문적이었는가?”, “조업할 때 왜 루비가 탔어야 했는가?” “왜 조업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루비가 자신의 꿈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를 곱씹어본다면, 이 영화를 단순히 가족 간의 감동과 눈물로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 일상적인 소통은 할 수 있겠으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을 옳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소중한 꿈과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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