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이렇게도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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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식개선교육에서 첼로 연주를 위한 선곡을 음성인식기능 어플로 받은 문자 사진
장애인식개선교육에서 첼로 연주를 위한 선곡은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받는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장애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듯 장애인식개선교육의 패러다임도 계속 변화한다. 그래서 이젠 교육에서 장애에 대한 ‘체험’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기자는 여전히 교육을 진행하며 꼭 체험하는 시간을 넣는다. 여타 교육에서 다른 강사들이 시도했던 그런 체험이 아닌, 기자가 가진 시청각장애라는 특성을 활용한 체험이다.

#1. 손바닥 필담

초등학교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가면 학생들에게 수어 몇 가지를 가르쳐 주는데, 이때 학생 중 한 명에게 ‘통역’을 요청한다. 강의안에 나온 수어를 보여주고 함께 그 수어를 구사해본 뒤, 무슨 수어인지 학생들에게 맞추게 한다. 그런데 답을 맞추기 위해 누가 손을 들고 있는지 기자의 저시력으로 잘 보이지 않아서 통역을 담당하게 된 학생이 손을 드는 학생을 지목한다.

그리고 손을 든 학생이 말한 답안을 통역 담당 학생이 듣고 내 손바닥에 글로 적어준다. 즉 기자가 저시력으로 보지 못하는 걸 통역 담당 학생이 보고 손을 드는 학생을 지목하고, 그 학생이 대답한 내용을 기자의 손바닥에 글로 적어주면서 ‘통역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것이다.

학생들과 수어라는 언어를 함께 공부해볼 수 있는 시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청각장애인, 나아가서 청각장애인과 이렇게 손바닥에 글을 적어가면서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방법은 수어를 배우는 코너뿐만 아니라 교육 후 질의응답 시간에도 활용했다. 질문하는 학생들의 질문을 통역 담당 학생이 내 손바닥에 적어주면 기자가 대답했는데, 이렇게 진행하면 통역 담당 학생은 질문할 기회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질의응답 전후에 꼭 통역 담당 학생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2. 음성인식기능 어플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첼로 연주를 함께하게 되면서 처음 한동안은 기자가 곡을 정해두고 연주를 했다. 하지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다양해지면서 교육 대상자들로부터 직접 선곡을 받아 연주하는 “선곡해주세요”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선곡을 받는 시간이 되면 기자의 스마트폰에 있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켜고 폰의 충전기 꽂는 곳에 무선 마이크를 연결한다. 그럼 교육장소 가장 뒤에 있는 사람이 무선 마이크에 듣고 싶은 곡을 이야기해도 기자가 들고 있는 폰에 문자로 인식된다. 기계라서 100% 정확하게 인식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강의안 화면에 띄운 네 곡의 제목 중 어느 하나를 선곡하니까 뭐라고 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도 교육생 중 누가 손을 드는지 기자의 저시력으로 정확히 보이지 않아서 활동지원사 등 누군가가 손을 드는 사람을 지목해서 무선 마이크를 전달해줘야 한다. 기자의 욕심으로는 직접 손을 드는 학생을 지목해서 그에게 가까이 가서 무선 마이크를 건네고, 그 자리에서 무슨 곡을 선곡하는지 확인한 뒤 무선 마이크를 돌려받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앞줄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어서 뒷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애타게 손을 드는 걸 미처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기자는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교육을 정말 선호한다. 소그룹이니만큼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할 수 있고, 기자의 바람대로 교육생들에게 가까이 가서 누가 손을 드는지 직접 확인하고 무선 마이크를 건네서 선곡을 받을 수 있다. 질의응답도 마찬가지로 직접 교육생들과 소통할 수 있다.

교육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면 교육생들에게 ‘시청각장애’라는 조금은 생소한 장애를 알려줄 수 있고, 손바닥 필담이나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어느 교육에서 질의응답시간에 어느새 본인 폰에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깔아서 기자에게 질문한 교육생처럼, 언젠가는 어디에서 누구와도 시청각장애인이 큰 어려움없이 소통이 가능한 때가 오면 좋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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