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커피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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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인은 촉각을 활용해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몸에 커트보가 덮여 있는 미용실에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 하지만 파마를 위해 커트보가 걷혀 있을 때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시청각장애인은 촉각을 활용해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몸에 커트보가 덮여 있는 미용실에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 하지만 파마를 위해 커트보가 걷혀 있을 때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박관찬 기자
  • 시청각장애인이 머리 디자인을 하러 간다면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시청각장애가 있으면 말로 하는 의사소통보다는 시청각장애인이 선호하는, 그에게 맞는 방법으로 의사소통한다. 그런데 때때로 일상에서 그러한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아 답답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는데, 바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때다.

시청각장애인이 주로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들은 수어(근접수어, 촉수어), 점화, 필담 등이 있는데, 수어의 근접수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촉각을 활용한다. 그런데 머리를 할 때는 커트보가 몸을 덮고 있기 때문에 손이 커트보 안에 있으니까 촉각을 활용하여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의사소통이 필요할 때마다 커트보를 걷고 손을 내밀어 대화해야 하는데,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흐름’이라는 게 있으니까 매번 그 흐름을 깨고 계속 촉각을 활용하여 소통하기엔 번거로움이 있다.

기자가 가장 선호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은 ‘손바닥 필담’이다. 이 방법은 디자이너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내 손바닥에 글로 적어주면 되는데, 그러려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마다 커트보를 걷고 손을 내밀어야 하고, 디자이너도 머리를 해주다가 멈춘 뒤, 가위와 빗을 내려놓고 손에 글을 적으면서 소통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흐름이 자주 끊기게 된다.

예전에는 디자이너가 조금이라도 머리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용실에 갈 때마다 활동지원사와 동행했다. 그런데 활동지원사는 미용실에 동행해도, 원장님의 말을 통역해줄 때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많았다. 또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히 배치된 의자들 사이로 활동지원사가 와서 커트보를 걷고 손에 글을 적어가며 통역해주기에 공간적으로도 비좁음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머리 미용에 대한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시청각장애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며 소통이 가능한 미용실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편한 마음으로 미용실에 갈 수 있지, 그러지 않고 아무 미용실에 갔다가는 제대로 되지 않는 소통으로 인해 기분도, 머리도 모두 망치기 마련이다.

기자가 지금 다니고 있는 미용실은 4년째 단골로 다니고 있다. 여러 번 가보고 소통하면서 지금은 편하게 혼자 미용실을 가고 있다. 활동지원사가 동행하면 물론 편하지만, 머리하는 시간 중 통역받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너무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상에서 자기개발(외모 꾸미기)을 하는 순간까지 굳이 활동지원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혼자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개인 연락처를 가르쳐주셔서 미용실에 가야 할 땐 원장님께 문자를 보낸다. 방문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어떤 머리를 하고 싶은지 미리 원장님께 이야기해두면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에 갔다. 상당히 많이 긴 머리카락들을 전체적으로 짧게 자르고, 파마를 했다. 평소처럼 문자로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명과 거울의 배치 등으로 인해 원장님이 어디에 있는지 내 시력으로는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미용실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는데, 소파의 푹신함을 느끼기도 전에 원장님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인사해주신다. 파마할 때 입는 옷도 가지고 오셨다.

이미 문자로 원하는 머리에 대해 다 이야기했지만, 자리에 앉고 원장님이 커트보로 내 몸을 덮기 전에 한 번 더 이야기한다. 그 다음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원장님의 손길에 내 머리카락을 맡긴다.

원장님은 머리 디자인을 하다가 문득 내게 말을 걸 때가 있다. 내가 안 들린다는 걸 알지만 커트보를 걷고 손에 글씨를 적어주는 과정을 생략하고 무의식적으로 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전혀 안 들리지만, 그동안 단골로 다닌 덕분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상황상 짐작하고 대답한다.

뒷머리 부분을 계속 만지면서 말씀하시면 “뒷머리는 어떡할까요?”라는 물음이라는 걸 짐작하고, “뒷머리도 좀 잘라 주세요.”라고 대답한다. 앞머리를 조금 자른 뒤에 그 부분을 계속 빗질하면서 질문하시면, “앞머리 길이 괜찮아요?”라는 물음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이땐 내 시력으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정확하게 안 보이니까 앞머리 길이가 괜찮은지 직접 보고 확인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감’으로 앞머리가 눈썹 위까지 짧아진 것 정도는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길이가 괜찮으면 “괜찮아요”라고, 아니면 “조금 더 잘라 주세요.”라고 대답한다.

머리 길이를 짧게 한 뒤 파마하는 단계가 되었다. 파마하는 동안에는 길이 문제로 질문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원장님도 질문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파마를 위해 작업하시면서 문득 내게 뭐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만큼은 기자도 원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파마를 하는 중이라 원장님은 장갑을 끼고 있어서 내 손에 글로 적어줄 수도 없었는데, 마침 파마한다고 커트보가 걷혀져 있어서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켰다. 그러자 화면에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문자로 인식되었다.

[커피 드릴까요?]

커트보가 걷혀 있는 상황이었기에 바로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원장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커피를 마시며 파마가 예쁘게 되길 기다릴 수 있었다. 의사소통이라는 건 어쩌면 미리 정해두고 하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는 방법으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원장님은 머리가 다 되면 항상 문자로 내 의견을 물어보시고, 또 원장님 생각도 말씀해주신다. 나는 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 요즘 날씨가 더워져서 짧게 잘랐다던지…. 그래도 나름 오랫동안 다닐 만큼 원장님을 신뢰하기에 늘 만족한다.

미용실에 가는 건 정말 소소한 일상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미지 변신을 한다거나, 따뜻해진 봄에 맞게 새로운 스타일을 연출한다거나, 더 예쁘게 꾸미기 위해 미용실을 간다. 기자도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용실을 가지만, 이전에는 미용실을 가는 게 늘 걱정과 불안이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소소함을 누릴 수 있음에 참 감사함을 느낀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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