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할 곳도, 제재도 없는 ‘일상적 차별’…구제 받으려면 소송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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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할 곳도, 제재도 없는 ‘일상적 차별’...권리 구제 받으려면 소송해야
▲한 헬스장이 시각장애로 인해 시설 사용에 위험이 있다면서 시각장애(저시력)가 있는 장애당사자에게 계약해지를 요구하자, '장애 차별'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 제보자 제공 및 편집
  • 헬스장에서, 식당에서 쫓겨나는 장애당사자들…어디에 신고?
  • 만연한 일상적 차별, 장애당사자의 자존감 뭉개고 좀 먹어
  • 인권위 구제 절차 있지만 ‘권고’가 전부…차별행위자가 무시하면 대책없어
  • 보조견 거부 과태료 300만원, 장애당사자 거부는 ‘0원’… 민사소송 뿐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헬스장 측은 자신의 헬스장은 공적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 제보자 제공

최근 서울 강서구에 사는 시각장애(저시력)를 가진 박 아무개 씨는 동네 한 헬스장을 이용하려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헬스장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본 후 충분히 시설 이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박 씨는 회원 계약을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계약 절차를 진행했던 담당 직원은 박 씨의 저시력을 감안해 약관 내용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헬스장 측은 같은 날 8시경 “장애인분들을 위한 시설과 안전대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에 박 씨는 다시 헬스장 측에 자신은 20년 동안 여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왔고, 그동안 장애로 인해 위험한 사고를 겪은 바 없다는 점을 자세히 전했다. 그러나 헬스장 측은 다음날 또 다시 문자를 통해 “눈이 불편한 상황이니 사고가 날 것 같기도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은 저희(헬스장)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환불처리를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 이에 박 씨는 다시 헬스장을 방문해 계약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만큼 장애를 이유로 헬스장 측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할 경우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헬스장 측은 박 씨에게 보호자 동반과 운동 중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 헬스장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 추가를 요구했다. 이에 박 씨는 비장애인 회원들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조건들을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요구하는 행위 또한 ‘장애인 차별’임을 분명히 하고, 추후 ‘장애인 차별’에 대한 법적 절차를 위한 내용증명을 헬스장 측에 통보할 예정이다.

일상에서 박 씨처럼 장애인 차별 상황을 겪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창덕궁 인근 북촌6길 골목에는 약 20여 개의 식당이 있지만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고 제보자는 주장했다. ⓒ 제보자 제공

서울 마포구에 사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황 모씨도 황당한 상황을 겪었다고 더인디고에 제보해 왔다. 황 씨는 지난 금요일 오전 가족들과 함께 창경궁과 창덕궁을 둘러보고 궁내 구석구석 설치된 경사로 등 편의시설에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관람을 마치고 창덕궁 앞으로 나온 황 씨와 가족들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고, 약 50여 미터에 이르는 북촌로6길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약 20여 곳에 이르는 식당들은 입구에 높은 단차나 계단들로 출입이 불가능했다는 것. 난감해진 황 씨는 결국 그 거리에서 유일하게 출입이 가능했던 한 김밥집(입구에 약 10센터의 단차가 있었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날이 더워 냉면을 먹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메뉴였다. 하지만 김밥집 사장은 비좁은 식당에 들어오면 어떡하냐고 응대했고 이에 친절로 착각한 황 씨가 괜찮다고 대답하자 김밥집 사장은 ‘내가 안 괜찮다’고 언짢아했다는 것. 자존심이 상한 황 씨가 ‘그럼 나갈까요?’ 되묻고 휠체어를 출입구 쪽으로 돌리자 김밥집 사장은 “나는 나가란 말은 하지 않았다”고 비아냥댔다는 것이다. 황 씨는 더인디고와의 전화통화에서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인 창덕궁 주변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식당이 단 한 곳도 없는 것도 황당한데 그나마 겨우 찾은 식당에서마저 쫓겨났다”면서, 이런 차별 행위는 대체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되물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두 사건 모두 ‘장애로 인한 차별’이며 일상에서의 ‘배제’된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지만 차별받은 장애당사자의 침해된 권리를 구제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규정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이 15년 전부터 시행되고는 있지만, 일상에서의 차별을 구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계의 한 관계자는 “헬스장에서 이용을 거부 당한 박 씨의 경우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를 금지한 장차법 제25조 위반이다. 하지만 차별이 명백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인권위원회의 차별 진정이 유일하고 제재는 차별 시정 권고뿐이다. 차별행위자가 권고를 무시하면 결국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된다”는 것. 결국 두 사건 차별 행위를 규정하는 법은 존재하지만 차별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마땅한 법적 절차가 없는 게 현실이다.

“안내견의 출입을 금지할 때에는 300만원, 장애인주차공간에 일반차량이 주차했을 경우에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지만, 정작 장애당사자들이 대중교통수단, 공공장소,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에서 쫓겨나도 마땅한 신고처나 제재 수단이 없다”는 장애계 한 관계자는 차별은 규정하되 처벌하지 않는 현재의 법적 절차를 꼬집었다. 일상적 차별에 대한 마땅한 구제책 없는 한 장애당사자들은 오늘도 쫓겨나고, 거부되거나 배제되며 그저 속앓이만 할 뿐이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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