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바보인가? 바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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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가 거울과 손님의 헤어스타일을 살피며 머리를 깎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발사가 거울과 손님의 헤어스타일을 살피며 머리를 깎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바버샵이란 곳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외모 좀 신경 쓴다는 젊은 남성 마니아층엔 꽤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인가 본데 난 그런 명칭을 듣는 것조차 처음이었다. “어떤 스타일로 해 드릴까요?”라는 디자이너의 질문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잘 어울리게 해 주세요.”가 최선이었다. 이런 스타일은 어떻고 저런 스타일은 어떤 것이고 나름의 전문용어들로 내 선택의 보기를 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잘 알아듣지도 못했거니와 ‘남자의 머리 스타일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하는 생각도 들었기에 디자이너 선생님의 결정에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익숙한 바리깡 소리가 들려온 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내 예상은 많이도 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순식간에 내 머리털들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잘려 나가고 있었다. 평소 다니던 미용실의 손길과는 머리로 들어오는 깊이부터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울을 볼 수는 없었지만, 뒤쪽의 머리는 어느 틈에 그 길이가 0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양쪽 옆머리의 사정도 비슷했다. 호날두가 어쩌고 유아인이 어쩌고 하며 달라지고 있는 내 머리에 대해 디자이너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가셨지만, 여전히 그런 설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시원하게 변해버린 내 머리를 보는 주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바버샵 다녀오셨나 봐요.”라며 극찬하는 쪽과 보자마자 터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부류들로 나뉘어졌다. 후자의 사람들은 “이게 바버샵 스타일이래요.”라고 덧붙여 설명을 해도 “뭐라고? 바보샵?”하며 더 크게 웃었다.

난 정말 트랜드에 발맞추어 획기적으로 멋있어진 것인지 아니면 정말 바보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정말 머리 잘 자르셨네요.”라는 말을 하며 어떤 이가 지나가고 나면 또 어떤 이가 “머리가 왜 그래요?”라고 말했다. 내 외모에 잘 관심 가지지 않던 이들마저 한 마디씩 덧붙이는 걸로 보아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내 머리 스타일은 파격 변신에는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눈 덕분에 다른 이의 선택들로 나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것에 익숙한 내 외모는 종종 양극으로 나뉘는 평가를 받곤 한다. “선생님 셔츠 너무 멋지네요.”라는 아침 인사에 어깨가 쑥 올라가려는 순간에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이는 “뭘 그런 걸 입고 왔어? 그건 다시 입지 않는 게 좋겠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렵사리 골랐다며 선물 받은 옷을 입고 간 어느 날엔 좋지 않은 평 늘어놓는 동료들 덕분에 선물한 이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니 외모도 스타일도 정답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별한 날 미용실 들러서 세팅한 머리를 보면서도 별로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지만, 바쁜 출근 시간 감지도 못한 부스스한 머리에 스타일 좋다며 칭찬하는 이도 있었다. 색깔이며 모양이며 디자인은 관계 없이 명품 브랜드의 옷만 멋지다는 이도 있고 반대로 저렴한 가격대의 옷들로 매칭하는 멋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직접 볼 수 있었다면 나 또한 어떤 쪽이든 멋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선명한 기준을 만들었겠지만 보이지 않다 보니 다른 이들의 선택에 의지하게 되고 그 어떤 기준도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헤어스타일은 누군가에겐 바보처럼 보였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바버샵의 멋스러움으로 느껴졌을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은 평가는 아니다. 바보라고 하든 바버라고 하든 그것은 그들의 평가일 뿐 난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로서 존재한다.

평가하는 이들의 멋짐은 단지 그들의 기준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맘에 들도록 사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 아니라면 자신의 변화들에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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