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환기

0
33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놓은 모습. ⓒUnsplash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놓은 모습.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문을 열면 반갑지 않은 냄새들의 조합이 코를 맞이한다. 이리저리 뒤섞인 어제의 흔적들은 언뜻 맡아서는 원래의 향과 출처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쾌쾌해서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바쁜 일로 점심 거른 어느 선생님이 드신 사발면 냄새도 있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다며 자랑하던 동료 선생님의 명품 향수의 잔향도 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며 뿌려 보던 디퓨저 향도 있지만 체육 시간 끝나고 다녀간 아이들의 땀 냄새도 있다.

어떤 향이 원래부터 더 좋은 향이고 어떤 향은 처음부터 악취였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명품 향수이든지 땀 냄새이든지 처음 존재하던 그때는 분명 의미를 가진 향이었음이 분명하다. 배고픈 이에겐 사발면 냄새만큼 옳은 것이 없었을 것이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던 또 다른 이에겐 커피 향이 정답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는 사무실 안에서 뒤섞여 버린 나머지 무엇 하나 원래의 좋았던 향을 기억하지 못할 뿐 하나하나의 향은 다시 맡아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 좋은 향들이라는 데에는 변함없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아침마다 환기하는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의 향기들을 다시 맡기 위함이다. 마구 복잡해져 버린 어제의 향들을 깨끗하게 내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향을 맡아보기도 전에 코는 마비되어 버린다.

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생각들을 경험한다.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도 어느 틈에 유연하게 굽힐 건 굽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당겨진 쇠뿔처럼 시작한 일은 한 번에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건강과 쉼이 최고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장애를 다름이라 여길 때도 있고 또 별다르지 않다고 주장할 때도 있다.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가치는 종교일 때도 있고 가족일 때도 있고 주변의 사람들일 때도 있다.

그때그때 쉽지 않은 고민으로 만들어 가는 내 생각과 사상들은 어느 틈에 뒤섞여 갇혀버린 아침 사무실의 공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발짝 더 내디뎌야 하는지 한 걸음 물러나야 하는지조차 결정이 어려워지는 순간엔 어떤 가치가 옳은 것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꽤 오랜 시간 깎아내고 다듬어 온 생각들이지만 한데 복잡하게 섞여버리고 나면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다. 이럴 땐 내 머릿속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하나하나 덜어내고 깨끗해진 머리가 되어야 단순하고 명료하게 새로운 생각을 담을 수 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일단 비우고 단순한 생각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오늘의 향기를 맡기 위해서는 어젯밤 닫혀있던 창문을 열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의 생각이 새로워지려면 머리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승인
알림
663bccc9a6ec8@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