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안형진 집필위원]
장애인 자립생활이 국내에 퍼진 후에, 장애판에서 임파워먼트로 총칭되면서 장애인의 역량, 권한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누스바움(Nussbaum)에 의하면, 역량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될 수 있는 것의 기회 보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장판에서 많이 말하는 ‘기회의 균등’과 일맥상통 된다.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표현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야장천 말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이다. 즉, 힘(권력)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힘(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다양하다. 물리적 힘을 통해서, 돈을 통해서, 사교성을 통해서, 인적 자원을 통해서 등등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법이 다양해도 힘(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임파워먼트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정의(justice)’라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중증의 뇌성마비나 발달장애인에게는 불공평해 보인다. 호혜적인 인상을 주기 어려운 삐뚤어진 표정과 듣기 불편한 목소리, 다수가 이상하다고 판단하는 행동 방식으로 아무리 떠들고, 아무리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서 발버둥을 쳐도 이미 기울여진 운동장에서 열나게 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에게 명령한다. “사회성이 부족하니, 더 역량을 키우라고”, 하지만 이 말이 나에게는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에게 계단을 부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호혜적인 표현과 관계에 제약받는 뇌성마비나 발달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정말 고민한다면, 앞으로는 임파워먼트, 사회성, 리더십, 정치력, 이런 단어들 대신에, 새로운 단어들이 장판에서 많이 화자가 되어야 한다. 아마 새로운 단어들은 ‘결과의 평등’, ‘자율적 참여;, ’의존‘ 이런 단어들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중증의 뇌성마비, 발달장애인 등의 호혜적 관계에 제약받는 장애인들의 존엄한 삶은 새로운 정책과 제도, 실천 기술만으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인간관과 정의관이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정책과 제도, 새로운 실천 기술 등은 그저 장애계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