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⑫귀로 보고 눈으로 듣고 휠체어로 걸어가는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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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스터 공대 투어를 도와주신 릭, 에린, 앨리슨과 로체스터 공대 투어를 마친 후 촬영한 드림팀 단체 사진. 김다솔 청년은 두 번째줄 맨 우측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로체스터 공대 투어를 도와주신 릭, 에린, 앨리슨과 로체스터 공대 투어를 마친 후 촬영한 드림팀 단체 사진. 김다솔 청년은 두 번째줄 맨 우측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시그마팀 / 김다솔]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하고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202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기술발전 팀이 지난 7월 31일부터 10박 12일간 ‘디지털 IT, 일상을 바꾸는 기술’ 주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체스터에 연수를 다녀왔다. 팀명인 시그마 Σ는 합의 기호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팀원들이 모였지만 서로를 포용하고 우리의 합을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8월 8일 오전 9시, 시그마 팀은 로체스터 공과대학(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 이하 RIT) 내 9개의 단과대 중 하나인 농·난청인들을 위한 국립 공과대학((National Technical Institute for the Deaf, 이하 NTID)을 방문했다.

NTID는 농·난청 학생들을 위한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공과대학이며, 등록금이 없는 학교로 설립되어 매년 600명의 학생에게 학업 및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기술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학생들은 RIT의 다른 단과대학에 교차 등록되어 있으며, NTID는 미국 수어인 ASL(American Sign Language) 통역사를 강의에 배치하는 등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평등하게 전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다. 또한, ASL 영어통역 분야의 학사과정과 특히 농·난청 교육 분야의 석사과정이 유명하다.

굴러라, 그대들과 함께 가기를

우리는 NTID 입학처장 릭 포슬(Rick Postl)과 입학처 직원 에린 케인(Erin Kane)의 안내에 따라 학교의 역사를 알아가며, 내부를 탐방하였다. 평소 접할 수 있는 보통의 건물 구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1층과 2층을 부분적으로는 개방된 공간으로 설계하는 경우가 있지만, 1층과 2층을 전체적으로 트이게 건축하여 농·난청인에게 시각적 장애물이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교실이나 식당도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원(circle)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농·난청인 친화적 설계 아이디어로 가득한 ‘데프스페이스(DeafSpace, 시각과 촉각이 공간 인식의 주요 수단인 청각장애인의 생활 방식에 최적화되어 고안된 공간 개념)’ 개념을 충실히 반영하는 공간이었다.

▲1층, 2층 상관없이 농·난청 학생들의 원활한 수어 소통을 위해 탁 트인 복층 구조의 공간이면서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1층, 2층 상관없이 농·난청 학생들의 원활한 수어 소통을 위해 탁 트인 복층 구조의 공간이면서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의학적으로는 청각장애라는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으나, 언어적으로는 수어, 구어, 필담 등 자신에게 편리한 언어를 다양하게 선택하여 소통한다. 하지만, 데프스페이스 안에서 수어 사용자는 공간을 초월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수어·구어 사용자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데프스페이스는 청각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소통하기 편리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 들어라, 지금 보이는 것을
학교 탐방 중에 시그마 팀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한 문구가 있었다.

“1981 NTID
From Dream to Reality
A visual historical display about NTID’ past and the present…a celebration of the Grand Experiment and a social history of NTID.
NTID and its mission have become a landmark in the history of the education of deaf students.
We hope you enjoy these reflections on NTID’s past and become inspired to be a part of its future”.

“1981년 NTID
꿈이 현실이 되었다.
NTID의 어제와 오늘에 관한 시각적인 역사적 전시… NTID의 위대한 경험과 사회적 역사.
NTID의 미션은 농교육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다.
NTID의 과거를 반추하는 기념물들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영감을 얻기 바란다.”

 보아라, 그대의 입과 손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해 주는 과정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NTID 전문가와의 발표와 질의응답이 4개의 언어로 진행되는 과정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이 상상이 되나요? 발표는 사전에 한국어, 한국수어와 미국 수어를 구사할 수 있는 팀원과 호흡을 맞추어 준비해서 내용을 전달했다. 질의응답에서는 NTID 전문가가 미국 수어로 답변하면 미국 수어 통역사가 수어를 보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통역 담당 팀원이 영어를 듣고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수어 통역 담당 팀원은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통역하는 과정을 거쳤다.

 다음은 우리가 만난 세 명의 NTID 장애 인사들이다.
패트릭 그레이엄(Dr. Patrick Graham)은 NTID의 석사과정 중 농교육 전문 교사 양성 프로그램 담당 농인 교수이다. NTID에서는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친 후 두 가지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하나는 농교육 전문 교사자격증, 다른 하나는 교과 전공(수학, 과학 등) 자격증이다. 2년 동안 다양한 수업을 수강하면서 교수 전략 및 학급 경영 실습을 경험한다. 학기마다 농학교나 공립학교에 있는 농학생들을 찾아가 교육실습을 이수한다. 졸업 전까지 유창한 미국 수어 실력을 요하며, 수어인터뷰 평가(SLPI; Signed Language Proficiency Interview)를 통과해야 한다.

게리 벰(Dr. Gary Behm)은 NTID 내 접근성 기술 연구소(CAT; Center on Access Technology)의 농인 연구소장이다.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에서 30년 근속 후 2013년에 로체스터 공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CAT 연구소의 미션은 농학생, 농·중복 장애(청각장애와 저시력, 청각장애와 지체장애 등)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의 요구를 최대한 맞춰주는 것이다. CAT 연구소는 여러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 조지아 공과대학(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과 함께 ‘수어 지문자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며, 농인뿐 아니라 농아동의 양육자들을 위한 다양한 소통 요구를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으며, 이는 회사들과 제품 개발 초기부터 장애 접근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앨리슨 벤츠(Allison Benz)는 CAT 연구소의 마케팅 담당 농·중복 대학원생이다. 청각장애와 뇌병변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대학원생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CAT 연구소에 대한 소개를 파워포인트로 보여줬다. 이 연구소의 또 다른 미션은 대학 과정의 농교육 내에서 최적의 기술을 실천하고 확산시키기 위하여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성 기술을 탐구, 평가 및 보고하는 것이다. 농·난청인들을 위한 가장 혁신적인 접근성 기술 연구를 목표로 하며 로체스터 공과대학의 프로젝트와 더불어 타 대학, 비영리단체, 사기업들과 협업 및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다음은 NTID의 장애 인사들과의 인터뷰 일부 내용이다.

접근성 기술 연구소장 게리 벰과의 인터뷰
Q. 디지털 마케팅을 전공하는 농·난청 대학생도 많다고 했는데, 마케팅은 사실 ‘소통’이 필수인 영역이다.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을 가진 분들이 실제로 졸업 후 얼마나 취업하는지 궁금하다.
A. NTID 학생의 95%가 정규직으로 취업한다. 농·난청 학생들의 취업을 수월하게 하려고 회사들에 소통 창구를 열어놓는다. 예를 들어, 회사들을 위한 워크숍을 열어, 회사에서 비장애 직원과 농·난청 직원이 어떻게 소통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비장애 직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미리 행사를 열어서 농·난청 학생들을 회사 입장에서 고용하기 편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Q. IBM의 엔지니어 매니저가 되고 나서 본인 전담 수어 통역사와 자막 등 편의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본인이 그 정도의 능력, 퍼포먼스가 뛰어났다는 것처럼 들린다. 회사 입장에서 당신과 전담 수어통역사 두 명을 고용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A. 매니저가 된 후 내 전담 수어 통역사가 있었다.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수어 통역사가 있었지만, 풀타임으로 하는 건 아니었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우리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회사가 직원의 요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열심히 일하면서 회사에 자기가 일할 의지를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자기 일을 수행해 낸 후에 편의 지원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하기도 전에 편의 지원부터 요구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

NTID 장애 인사분들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여러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그마 팀원들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마치게 되었다. 가까이 보아야 자세하게 알 수 있듯, 이번 연수를 통해 비장애 팀원들은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당사자의 하루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장애 팀원들은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학습하기 위해, 직장에서 직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편의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방법(Self-advocacy)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착한’ 장애대학생으로 살기란 정말 어렵다. 나는 장애 학생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내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적합한 편의 지원을 받고 싶다고 매번 건의해 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계적이었고 긍정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을 동시에 받고 싶다고 요구해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하나의 지원만 선택해야 한다는 답을 들을 때마다 좌절하곤 했다. 또한 이제껏 장애학생들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경험이 적은 교수에게 나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건의할 때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항상 쉽지 않게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 되긴 싫었다. 더 이상 내가 강의실에 외로이 앉아 있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각장애는 남들의 표현에 따르면 ‘장애인 티가 가장 안 나는 장애’이지만 보이지 않는 의사소통의 벽이 높기 때문에 ‘가장 티 나게 외로운 장애’일지도 모른다.

많은 연구자가 청각장애 학생들의 또래보다 낮은 문해력 및 학업 성취도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과연 우리나라의 청각장애 초·중·고·대학생들은 시기를 막론하고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환경에서 공부해본 적이 있거나 편의 지원을 선택의 고민 없이 받아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청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수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고 잘 듣고 잘 말하는 것도 아니다. NTID는 전반적으로 청각장애, 수어, 농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큰 것이 장점이며 청각장애 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두 인정해 주는 곳이었다. 수어를 사용하는 학생 및 교직원이 다른 단과대학보다 조금 많을 뿐, 구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 학생이나 비장애 학생을 수업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강의를 수강하러 왔고 편의 지원을 달리 하여 모두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만든다. 학생 개개인이 일일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고, 만약 잘 모르더라도 요구를 들으려는 적극적인 분위기가 한국과 너무 달라서 부럽기도 했고 한편으로 마음이 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림팀 연수 전 준비 과정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시그마 팀원들과 함께 서로의 각기 다른 장애를 기꺼이 귀로 보고, 눈으로 듣고, 휠체어로 걸어보았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인상착의를 말로 묘사해 주고, 사진을 공유할 때 사진 설명을 덧붙이며, 비장애 팀원들이 번갈아 가며 팀 회의 때마다 타자로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써주고, 수어 통역을 신청해서 단체 회의에서 소외되지 않게 한다. 팀원을 부를 때 음성과 수어 이름을 동시에 말하고 휠체어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척척 접어서 트렁크에 실을 줄 안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연습의 연습을 거듭했고 실수도 자주 하면서 서로 다른 장애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을 몸소 배워 왔다. 작은 변화는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나를 바라보고 규정짓는 세상의 인식이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드림팀 연수는 로체스터 공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지만, 나의 드림팀 연수 이후의 삶은 이제 새 장을 열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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