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65] ➀ 최윤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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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차 화요집회에서 최윤정 부모연대 서울지부 양천지회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65차 화요집회에서 최윤정 부모연대 서울지부 양천지회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더인디고] 딸은 올해 중학교 2학년 되는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났고 영유아 검진에서도 특이 사항이 없었어요. 잘 먹고 잘 자고 무럭무럭 잘 컸어요. 큰딸이 중학생이 되고 둘째가 초2가 되던 해에 태어나서 큰언니는 공부보다는 인간성이 좋고 둘째는 사회성은 좁아도 공부를 무척 잘하는 아이입니다. 셋째는 공부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십 년이 지나 육아가 다시 시작되니, 직장 후배들에게 유치원과 놀이학교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둘째 때 보냈던 어학연수도 다시 확인해 두고… 그런데 돌이 지나가서 말이 늦고 호명에 즉각적인 반응이 없어서 걱정하면서도 괜찮다 늦을 수도 있지 하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의견은 애써 무시하면서 2돌이 지났고, 자리가 나기 쉽지 않았던 공립어린이집이라 13개월부터 보냈습니다. 33개월쯤 어린이집 선생님이 돌려서 편하게 말하니 제가 잘 못 알아들어서인지 직접적인 단어로 아이의 상황을 얘기 해줬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3년 정도 우울증을 앓았어요.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를 듣고 센터로, 복지관으로 사설학원으로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큰언니가 고등학생, 둘째가 중학생이었는데, 동생 때문에 엄마에게서 자유를 얻었죠. 공부를 엄청 푸시 하던 엄마가 이제 너희는 알아서 공부해라, 학원도 과외도 전부 아이들이 알아보고 저는 결제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와 아이들은 그때 정말 행복했다고 합니다. 제가 푸시 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 저만 아쉬워합니다. 처음 아이의 상황을 알았을 때 주변에 도움받을 때가 많지 않았어요.

먼저 키웠던 선배들에게 조언받는 것도 부족했고, 지자체나 부모연대처럼 도움받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워 센터 대기석에서 만난 엄마들에게 조언받습니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일단 시작 해보자 해서 언어, 음악, 미술, 체육… 고3 아이와 막내의 사교육비가 비슷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지금 돌아보면 그때 ABA 교육을 알았으면 좋았을걸(초기 단계라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강남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증상을 확인했을 때 종합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체계적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시작하고 또 부모연대처럼 선후배님들이 많은 단체에 가입해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시기적절한 교육과 양육자의 정신적인 피로에 공감하고 힘을 줄 수 있는 선배들의 리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성인대상 ABA 교육을 4시간 들었습니다. 제가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응하는 방식이 잘 못된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배운 것을 냉장고에 붙여 두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아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써보라고 하셔서 20개 정도 썼습니다. 이것을 매년 딸의 생일에 노트에 써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 키우면서 좌절하고 낙담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차이 나게 못하는 아이에게 실망하고 그때그때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들곤 했지요. 지금 14년을 함께 살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지금은 우리 아이의 비교 대상은 어제의 우리 아이입니다. 어제보다 더 잘하는 모습, 지난달보다 잘하는 것. 작년보다 나아진 것… 이렇게 비교하면서 아이를 보니 사랑스럽고, 이쁘고, 귀하고, 대견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는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대중교통도 잘 타고 잘 먹고, 잘 자고, 여행도 좋아하고, 식사 전에 식탁 정리 수저 챙기기, 냉장고 반찬 꺼내고, 식사 후에 챙겨 넣고 설거지통에 그릇도 넣어줍니다. 설거지는 싫다고 합니다만, 매일 매일 자기의 속도로 발전해 가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실무사님 도움을 많이 받아 통합반 수업에 전체 수업의 반 정도는 함께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실무사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하여, 4시간 마치고 활동보조인이 급식 지원해주셔서 맛있게 급식을 먹고 하교합니다. 하교 이후에는 복지관과 발달센터, 언어, 수영, 체육수업을 받습니다. 아이가 통합반에서 착석은 가능해졌는데, 수업시간에 지루함을 혼자 감당하지 못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으로 빛 감각 추구 등을 합니다. 아이도 못할 상황이고 같은 반 착한 친구들에게도 불편을 주게 되지요. 내년에는 실무사님 도움받아 통합반에서 하루 한 시간이라도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미리 부탁드려 놨습니다.

우리 딸처럼 특성에 맞는 맞춤형 특별 (대안) 학교가 많이 생기면 너무 좋겠지만, 아이에게 늘 좋은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 주시고, 사랑으로 대하는 걸 느껴서 감사합니다.

제가 키워온 세월보다 앞서 장애인식 교육도 없고, 적절한 교육기관도 없을 당시에 우리 막내 같은 상황에서 자녀를 키운 선배님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그래도 많은 지원을 받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부모연대 양천지회의 정회원이 되어, 집회에 시간을 맞춰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삭발하고 오체투지를 해도 여전히 급진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바위를 뚫는 물방울은 강해서가 아니라 꾸준함입니다. 우리는 꾸준하게 우리의 자녀와 우리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함께라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구분되지 않는 사회, 불편함이 있으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우리의 대한민국이 되리라 믿습니다. 누구도 장애를 갖지 않을 것이러 하고 개런티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내가 건강하니 나는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면 선뜻 손을 내밀고 도와주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새해에는 어제보다 많이 웃는 오늘을 만들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모든 엄마도 매일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2024년 1월 9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65회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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