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보호자와 동행해야 투표할 수 있다고?

0
128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가 복지카드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거부당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가 복지카드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거부당했다. 사진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선관위 직원들의 장애에 대한 부족한 감수성
  • 전국 투표소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것도 논의해야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사전투표를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사전투표를 하러 간 곳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과 실랑이가 있었다. 본인 확인을 위해 박 대표가 제시한 복지카드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신분증으로서 유효하지 않으므로 투표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복지카드도 신분증과 같은 효력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이렇게 장애인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조차도 장애에 대해 몰지각한 누군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박 대표와 아주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애 정도와 유형, 특성에 따라 어려움을 겪은 장애인들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그들을 만나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들어봤다.

수어통역 신청보다 수어통역사가 대기하고 있다면

청각장애가 있는 A 씨는 성인이 된 뒤 투표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혼자’ 투표를 한다. 그렇지만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 등 관계자와 소통을 해야할 때는 무슨 문제라도 생기지는 않을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A 씨는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고 나오기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다”면서 “그 몇 분의 시간을 위해 굳이 수어통역을 신청하고 수어통역사와 몇 시에 만나기로 할지 정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좀 번거롭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고 했다.

이어 “수어통역지원이 되면 신분증 제시 등 소통이 필요한 과정에서 통역을 받을 수 있으니 굉장히 편안한 마음으로 투표를 할 수 있을 텐데, 이건 제가 신청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당연히 지원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공휴일에 선관위 직원들이 근무하듯이 수어통역사도 각 투표소마다 적어도 한 명씩 배치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다”고 부연했다.

A 씨의 경험에 의하면,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그 병원에 상근하는 수어통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A 씨가 따로 수어통역지원을 신청하지 않아도 A 씨가 진료와 접수 등 일련의 과정에서 필요한 통역은 병원에 상주하고 있는 수어통역사가 지원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수어통역사는 병원을 방문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수어통역이 필요할 경우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A 씨는 “단 한 명이라도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지원인력이 배치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날에도 전국의 모든 투표소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 있으면 좋겠다. 이게 바로 장애감수성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발달장애인도 혼자 투표할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 B 씨의 부모는 B 씨가 성인이 된 뒤 투표권을 행사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처음에는 부모나 활동지원사가 투표하는 곳까지 같이 가서 지원해주곤 했지만, 이젠 B 씨 혼자서 투표소를 찾아갈 줄 알뿐만 아니라, 투표권도 행사하고 온다. 요즘 많은 이들이 하는 ‘인증샷’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B 씨의 부모는 투표일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부모는 사전투표를 했고 B 씨만 당일에 투표를 하게 되어 B 씨 혼자 투표소에 갔는데 시간이 지나도록 B 씨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 B 씨의 어머니 C 씨가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투표소로 갔다.

투표소에서 B 씨를 금방 찾을 수 있었는데, 투표를 했냐고 물으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C 씨가 확인해 보니 본인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선관위 직원과 B 씨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까 투표를 못 하게 하고, 보호자와 동행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C 씨는 해당 직원에게 가서 항의했다. B 씨가 성인이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잘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 씨는 “요즘 ‘소소한소통’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를 만들어서 제공한 덕분에 B 씨도 투표권 행사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다. 다만 선관위 직원과의 의사소통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라며, “선관위 직원들도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을 텐데, 이렇게 장애에 대한 이해가 몰지각한 게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C 씨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호자나 누군가와 동행해야만 투표할 수 있다는 것도 잘못”이라며 “혼자 투표가 가능한데, 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에 조금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자립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C 씨가 온 덕분에 B 씨는 무사히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C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직원 대상 장애인식개선교육의 심층적인 교육과 대책 강구를 강력히 건의할 예정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승인
알림
662fdcad9bec0@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