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학습을 함께, 느려도 함께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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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고래놀이연구소의 간판
꿈고래놀이연구소는 놀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지를 제작하며, 느린 학습자를 위한 맞춤형 교재를 수정한다. ©박관찬 기자

  • 이런 곳이 있습니다-3
  • 활동지와 놀이를 함께 연구하는 꿈고래놀이연구소
  • 느린 학습자를 위한 맞춤형 교재 수정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현대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자신의 경력과 이익을 챙기기 바쁜 시대적 흐름이 대세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것도 누가 꼭,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일을 하는 모범적인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고, 그만큼 관심도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되기에 ‘이런 곳이 있습니다’에 꼭 소개하고 싶은 곳이다. 바로 ‘꿈고래놀이연구소’다.

꿈고래놀이연구소의 대표인 박현주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표님’보다는 ‘원장님’이라는 호칭이 훨씬 익숙하다. 지난해까지 15년동안 ‘꿈고래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틈틈히 소소하게 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올해부터 본업으로 시작하게 된 꿈고래놀이연구소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들어봤다.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가정에서 놀이로 할 수 있는 가정학습키트를 만들어서 보냈어요.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는데 코로나가 지속되니까 일주일에 하나만 보내도 자료가 엄청나게 많이 쌓이게 되었어요. 그리고 가정통신문 같은 것들도 디자인하기 좋아해서 그런 작업한 걸 다른 어린이집 원장님들에게 공유하기도 했는데, 다들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정리해서 가지고 있던 자료들 중 필요로 하는 선생님들에게 개인적으로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엔 막 그냥 뿌렸었죠.”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가정학습키트가 ‘학습지’면서 동시에 ‘놀이’도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학습지를 만들면서 놀이? 이렇게 생각하면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오랫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박현주 대표는 아이들이 ‘놀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었단다. 재미없는 학습지 말고 ‘괜찮은데?’나 ‘할 만한데?’라는 생각이 쌓여지는 그런 데이터를 만들고 싶었고, 실제 코로나 시기에 ‘놀이중심 활동지’를 만들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연구소를) 오픈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학습지를 만들면서 왜 논다고 하냐고 해요. 너무 모순 아니냐고. 그런데 교사의 질이나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공평하고 보편적으로 접근해 줄 수 있는 게 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요즘 프린트를 못하는 곳은 없으니까. 가정이나 어린이집, 학교에 교재교구가 다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요즘 아이들 특히 자폐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가 있는 경우는 굉장히 다양하고 각양각색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을 다 맞춰줄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종이로는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아이들의 관심도나 선호도에 맞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가나다를 쓰기보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한다

놀이가 가능한 활동지 제작 외에 박현주 대표가 꿈고래놀이연구소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는 ‘교재 수정’이다. 발달장애인이나 느린 학습자의 특성에 맞게 교재를 수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6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경제체제의 특성이 나오는데, 소비자와 생산자, 소비와 기업의 역할이 나온다. 발달장애인과 같은 느린 학습자의 경우에는 이런 단어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으므로, 이를 학습자의 특성에 맞게 박현주 대표가 수정하는 것이다.

“어떤 친구가 자폐스펙트럼의 범주 안에 있는데 한글을 잘 읽지만 뜻을 몰라요. ‘테이블 위에 사과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여주고 그림 카드를 보여 주면 찾을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아이를 위해 경제활동에 대한 내용을 다른 아이들과 동일하게 교과서에 나와있는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페이퍼(종이)를 제작해 주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이나 느린 학습자가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에서 색칠공부나 가나다를 쓰는 게 아니라, 느린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교재로 수정 제작(오른쪽)한다. ©박관찬 기자

사회 교과서라면 역사도 많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도 박현주 대표는 그냥 넘어가기보다 학습자의 수준에 맞게 활동지를 제작한다. 굳이 병자호란이나 갑신정변과 같은 의미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수준에 맞는 사회(역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아이가 긴 삶을 살 때, TV에서 사극이 나오고 있으면 최소한 저 옷을 입으면 임금님이다, 오랑캐다 이런 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특정 역사적 장면을 컬러링을 하면서 표시해줘요. 이를 통해 성인이 됐을 때 가족들이 드라마를 볼 때 혼자 뽀로로나 패드를 보지 않고 같이 보는 정도만 되더라도 저는 훌륭하게 사회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목표를 맞춰가는 게 조금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디까지 가르치면 좋을지 고민해서 이 아이가 정말 씹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작게 나누어서 제공하는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문득 사극을 가족과 함께 보는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있을지 상상해 봤다. 장애정도가 심할수록 역사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럼 발달장애인의 가족은 그냥 같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발달장애인이 사극을 보지 않고 뽀로로나 패드를 보며 ‘다른 것’을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박현주 대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족과 ‘같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것도 가족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수준에 맞춰서.

“사회 시간에 발달장애아이들이 색칠공부를 하고 있거나 교과서의 내용이 아니라 고구마, 감자, 고양이 이런 것들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럼 아이가 별도의 섬에 고립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비장애아이들은 직업과 경제체제를 배우는데 이 아이만 가나다를 끊임없이 쓴다면 우리반 아이같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은 내용을 다른 수준으로 제시해주기 위해서 활동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통합교육이라는 이름보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이 먼저다

교육계에서는 ‘완전통합교육’을 표방한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지만 실제로 얼마나 잘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장애학생이 특수학교에 갈 자리가 없으면 일반학교에 보내지고, 통합학급에 배치되면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학급에 있는 걸로 통합학급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뿐인 통합교육일지도 모른다.

“완전통합되는 아이들이 제가 알기로는 착석이 가능하고 문제행동이 없으면 일반학급으로 그냥 가요. 그러다보니까 이 아이가 한글과 숫자를 전혀 몰라도 하루에 세네 시간 정도를 그냥 앉아서 견뎌야 되더라고요. 혹시 아이가 돌아다니거나 산만해하고 자해를 하면 교사는 아이가 문제라고 하죠.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학교가 문제인 거죠. 아이에게 맞는 것들을 제공하지 않았으니까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건강한 꿈을 꾸며 성장하면 좋을지, 어떻게 통합교육이 이뤄지면 좋을지 늘 고민하게 된다는 박현주 꿈고래놀이연구소 대표. ©박관찬 기자

그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디자인과 교재 구성, 교육과정 편성, 수정과 디자인이 한 번에 되는 멀티형 사람, 그리고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박현주 대표다.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또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꿈고래놀이연구소 홈페이지 오픈을 비롯해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할 꿈고래놀이연구소의 앞으로를 꼭 응원하고 싶고,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꿈고래놀이연구소의 첫 단어인 ‘꿈고래’에 담긴 의미는 박현주 대표의 마인드를 잘 엿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지 ‘꿈고래’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에서 꿈고래놀이연구소의 성공을 응원해주고 싶게 한다.

“옛날에 어떤 TV 광고에서 ‘아들아 새우잠을 자도 고래꿈을 꿔라’라는 멘트가 되게 와닿았어요. 바닷속에는 보잘것없고 소소한 것들을 포함해서 정말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지만, 걔네들이 꿈마저 새우꿈을 꾸진 않잖아요. 꿈을 건강하고 크게 꿀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꿈고래로 지었어요. 그렇게 아이들이 건강한 꿈을 꾸면서 경쟁뿐만 아니라 협동하는 것들이 진정한 통합교육으로 이뤄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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