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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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열린 형법 제328조 1항 위헌확인 등 헌법재판소 판결 전경. /사진=헌법재판소 선고동영상 캡처
▲6월 27일 열린 형법 제328조 1항 위헌확인 등 헌법재판소 판결 전경. /사진=헌법재판소 선고동영상 캡처

[더인디고=은종군 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

▲은종군 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 ⓒ은종군
▲은종군 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

지난 70년간 우리는 내 재산을 도둑질한 이를 처벌할 수 없었다. 친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A씨는 부친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숙부와 숙모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A씨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했고 함께 거주했다. 당시 A씨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2억 원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숙부와 숙모는 A씨가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을 알고 상속재산과 급여 및 퇴직금 등 2억 4천만 원을 빼앗고, 1억 원 상당의 채무까지 지웠다.
A씨는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지원을 받아 가해자들을 2020년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동거친족’이라는 이유로 불기소처분했다.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고도 어떠한 구제도 받을 수 없고, 처벌의사가 있어도 할 수없는 이 상황은 국가가 범죄피해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외면한 것이다.

6월 27일. 헌법재판소는 A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친족상도례 규정(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위헌이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무려 71년 만의 일이다.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정하고 있다. A씨를 비롯한 비슷한 피해를 당한 수많은 사람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유다. 이해할 수 없고 상식적이지 않다.
A씨의 피해는 장애인학대의 대표적 유형인 경제적 착취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접수 된 사건 중에서 신체적 학대 다음으로 많이 발생하는 학대이다.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가족 및 친인척에 의한 경제적 착취(295건)은 전체 장애인학대(5,152건)의 5.7%로 적지 않은 수치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지만 가해자인 친족들은 동거를 이유로 처벌을 면제 받았다.

친족상도례는 핵가족화로 친족 간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친족 간 재산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 필자가 당시 근무했던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함께 대리인단을 구성하여 A씨 사건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게 되었다.
또한 연속선상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친족의 경제적 착취 사건에서 친족상도례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하는 입법을 위해 토론회를 열고, 또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국회의원의 대표 발의로 형법 제328조를 적용하지 않는 장애인복지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 현재 장애인복지법 제88조의3(형법 적용의 일부 배제) 조항이 신설된 배경이다.
하지만 개별법에서 특정 계층에 한해 적용 배제하는 반쪽짜리 개정에 불과했다. 장애인 외에도 아동, 노인 등 가족구성원의 돌봄을 필요로 하며 재산범죄에 취약한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헌재도 친족상도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판결에서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친족간의 재산범죄에 대해 가족 내부의 결정을 존중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형법의 취지는 그 시효가 오래전에 끝이 났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의 원칙이 지금의 시대에까지 적용된 것은 법과 제도가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역사적인 판결로 누구나 국가의 보호를 받고 기본권이 권리로써 보장되는 것이 당연시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며>
헌법불합치가 나오기까지 용기를 내어주신 A씨에게 감사를 드리며,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지속하시기를 바란다. 또 비슷한 피해로 고통을 겪은 수많은 A씨들에게도 매일 매일 희망의 싹이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대리인단으로 함께해주신 법률사무소 동행, 공익인권법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법무법인(유한) 동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에 감사드린다. 4년이라는 긴 시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애써주신 김광훈 변호사, 김창균 변호사, 송시현 변호사, 이정민 변호사, 이현우 변호사, 정제형 변호사, 최현정 변호사, 부산장애인권익옹호기관 김태훈 관장,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김현정 팀장에게도 감사드린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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