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버스를 대중교통으로 돌려놓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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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버스 ⓒ더인디고
▲서울 시내버스 ⓒ더인디고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버스는 대중교통인가?’라는 주제로 작은 토론회를 열었다. ‘대중’이라는 보편적 단어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아무 불편 없는 편안함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 나처럼 눈이 보이지 않거나 아주 조금만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있었고 리프트 없이는 버스에 탑승이 어려운 지체장애인들도 있었다.

배차 간격이 일정하지 않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긴 지방 소도시의 사람들과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를 힘들어하는 체구가 작은 사람들도 함께했다.

그 언젠가 다른 토론에서처럼 다른 나라들의 높은 인식 수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나 기술에 관한 의견도 나왔다. 어떤 이는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또 다른 이는 버스회사의 안정적이지 않은 수익구조가 개선되어야 해결될 문제라고도 했다. 강력한 법과 제도가 아니면 아무런 방법도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교통약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교통수단을 마련하거나 특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토론에서 나온 대부분의 의견은 벌써 수십 년째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이야기했던 것들이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서로의 불편을 알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또다시 그런 결론에 도달했지만 우리에겐 그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탄 버스에 휠체어를 탄 승객이 리프트를 이용해서 타야 한다면 우리는 몇 분이나 기다려 줄 수 있을까?“

5분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얼마가 되었든지 기다려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이도 있었다.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역차별의 소지가 있으니 법적으로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우리에겐 몇 번 마주하지 않을 작은 기다림이지만 그들에겐 매일의 생존과 삶이 걸린 문제이므로 그 정도는 언제라도 양보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진행자의 역할이라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라면 얼마 정도 기다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쉽게 ‘당연히 기다려야지’라고 결론 내릴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출근하던 중이라면?”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한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리프트를 이용한다면?”

생각이 깊어질수록 내 기다림에 대한 확신이 줄어갔다. 그리고는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던졌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내가 다리에 깁스하고 당분간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이라 가정한다면, 버스를 탈 때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기다려달라고 해야 할까?”

나 역시 출근해야 하고 또 약속 장소에 바쁘게 갈 일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나처럼 휠체어를 탄 동료들과 함께 어딘가로 이동해야 할 일을 마주할 수도 있다. 기다려 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에겐 조금 늦어지는 몇 번 안 되는 상황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누군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일상의 절박한 문제였다. 택시를 이용하거나 승용차를 운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버스는 ‘대중교통’이었다. 그리고 나도 대중이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스를 함께 이용하는 것이었다. 난 다른 이들과 좀 다른 방법으로 버스를 타는 것이었고 그게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었다. 대중교통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좀 느려질 수도 있고 기다림을 감수해야만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많은 기다림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빠르게 결재를 받아야 하는 문서가 있지만, 상사의 부재로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을 기다리기도 한다. 2시에 만나기로 한 친구의 사정으로 4시에 만날 수도 있고 몇 시간이나 일찍 나온 도로에서 갑작스러운 정체가 이어져 꼼짝 못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크게 틀어지지도 않고 누군가를 격렬하게 원망하지도 않는다.

결재할 책임이 있는 상사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아야 하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하지도 않고, 약속에 늦을 수 있는 친구에게 무조건 택시를 타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물론 도로의 정체를 유발한 누군가를 색출하거나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국가가 나서서 엄청난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해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그것은 이미 익숙해서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대중교통’인 버스에 타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버스는 편리하게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번호를 볼 수 없거나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버스를 대중교통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접근하기 어렵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버스가 어떤 것인지 힘들어하는 어르신을 위해 조금 더 기다려 줄 수도 있고 지팡이 짚은 시각장애인에게 번호를 읽어주느라 약간의 시간을 쓸 수도 있다.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약속이 있지만 휠체어 타는 5명의 승객을 기다리다가 20분 정도의 시간을 지체할 수도 있다. 상사의 부재 때문에 늦어진 결재를 이해하듯이 갑작스런 차량정체로 늦은 친구를 이해하듯이 그런 기다림의 이유로 늦은 모두를 이해하면 된다. 어쩌면 큰 예산이나 대단한 법 집행 없이도 우리는 버스를 대중교통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아주 가끔 조금씩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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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sign@m4sign.com'
이근영
3 years ago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