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Young의 쏘Diverse] 이름 짓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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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소수의 소리①

약자 차별과 혐오 뜻 담긴 이름 계속 만들어져…편견 유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은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로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 ‘이름’의 사전적 뜻이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1을 미미, 컴퓨터2를 쥬쥬라고 따로 이름을 지어 부를 수도 있지만, 이미 ‘컴퓨터’ 라는 명사도 사물의 이름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사물에 그에 걸 맞는 이름을 붙인다. 약속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우리는 한 때 ‘정상인’이나 ‘일반인’으로 명명해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장애인은 비정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장애에 대한 많은 편견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 편견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름을 바꾸는 일이었다.

이름의 힘은 강하다. 그리고 여전히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뜻이 담긴 이름들이 만들어지고 쓰이고 있다. ‘우한폐렴’으로 불리던, COVID-19. WHO는 2015년 특정 국가·종교·민족 등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지역이름, 사람이름, 직업명칭 등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도, 2014년 ‘신안염전노예사건’도 올바른 명명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칭을 넣어 지역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기보다는, 화재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라던가, 사건의 본질을 명확히 하는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 등으로 고쳐서 불러야 한다.

실제로 한 연구자가 2007년 기름 유출사고를 두고 실험을 하였는데, 그 결과를 보면 이름이 우리의 사고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라는 이름 짓기가 등장한 기사를 읽은 피험자일수록 이 사고의 책임을 삼성으로 돌렸다… 삼성에 대한 분노 정서와 태안에 대한 동정 정서를 경험하였고…” (상징적 이름 짓기의 프레이밍 효과: 태안 vs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 2009)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태안군청

이렇듯 사건의 가해자를 교묘히 감추는 이름은 주로 사회적 권력자들의 힘과 관점이 담겨 만들어지는데, 2004년 폐지된 ‘윤락행위등방지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불법적인 성행위를 방지하고자 시행됐던 이 법에 사용된 ‘윤락’이라는 단어는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짐’이라는 사전적 뜻을 갖고 있다.

성을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남성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들만 드러난다. 법을 제정하는 권력자들의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명명과, 결국 이것이 약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름 짓기는 진실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복지서비스 ‘수혜자’를 ‘이용자’나 ‘구매자’로 부르고,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여성의 책임으로만 표현했던 방식을 남녀 공동의 책임인 ‘저출생’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지난 날 각종 이름들이 우리들을 가둬온 편견의 프레임에서 탈출하기 위한 작지만 큰 시작이다.

이름의 힘은 정말 강할까? 끊임없이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고 외치고, 국제기구에서 공식적으로 ‘COVID-19’로 이름을 바꿔 놓았지만, 여전히 장애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고, 동양인은 ‘COVID-19’ 전염자로 낙인 찍혀 혐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부정적 프레임에 갇힌 이름의 힘은 강하나, 긍정의 의미가 담긴 이름은 당연시되거나 오히려 무시되는 것만 같아서 마음 한쪽이 답답하다.

나는 그저 보통의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지만 권력자나 가해자의 일방적인 시각만 담겼거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관습적으로 특정 그룹을 차별하는 뜻이 담긴 이름들을 찾아내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세상을 하얗게(素흴 ) 비추라(暎비출 )’라는 우리 부모님이 내게 주신 이름이 더욱 의미 있어지도록.
[더인디고 The 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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