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레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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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만화가 클리퍼드 베리먼(Clifford K. Berryman)이 그린 레임덕 현상 풍자만화
▲미국 만화가 클리퍼드 베리먼(Clifford K. Berryman)이 그린 레임덕 현상 풍자만화
  • 지속 가능한 언어 모색해야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한국어에는 동물을 빗대어 상대를 비하하는 단어가 많은데, 영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개(Dog)는 ‘가치 없는’, 닭(Chicken)은 ‘겁쟁이’, 쥐(Rat)는 ‘고자질쟁이’, 뱀(Snake)은 ‘얼간이’, 돼지(Pig)는 ‘역겨운’, 나무늘보(Sloth)는 ‘게으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에 국제적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는 사람들)는 “동물을 경시하고 폄하하는 인간우월주의적 태도에 기름을 붓는 격”이므로 “말하기 전에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동물의 이름은 욕설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도 쓰인다. 바로 정치·경제 현상을 설명할 때 레임덕(lame duck, 절름발이 오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정권 말기인 요즘 다양한 매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레임덕의 유래는 18세기 런던 증권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가가 오르는 장세를 황소에, 내려가는 장세를 곰에,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른 투자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했다.

영국 금융계에서 쓰이던 이 말은 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가 정치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860년 11월 6일 대통령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었으나 현직 대통령인 제임스 뷰캐넌 임기가 1861년 3월 4일까지였기 때문에 4개월 동안 커다란 국정 혼란이 있었다. 이후에도 신임 대통령 당선일과 현직 대통령 퇴임일 사이에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되었는데, 그 기간을 특별히 ‘레임덕 기간'(lame duck period)이라고도 불렀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레임덕을 ‘권력 누수 현상’, ‘임기 말 현상’이라고 풀어쓰기도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레임덕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용구이지만 동물을 빗댄 욕설이 될 수 있으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7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다주택 보유자들의 금융실태 확인을 요청하며 “경제부총리가 금융 부분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이 발언을 두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는데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 의원이 절름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은 사실 명백하게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절름발이는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 몸이 한쪽으로 자꾸 가볍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한쪽 다리가 온전치 못하거나 다쳐 보행이 편하지 못한 장애인이나 환자를 낮잡아 비하하는 표현이다. 절름발이처럼 일상 속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장애인 비하 표현으로는 ‘장님’과 ‘벙어리’, ‘귀머거리’ 등이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이 같은 장애인 비하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였는데,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도발에 ‘벙어리’가 돼버렸다”고 발언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는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선천적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다 보니 의지가 좀 약하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거에 대한 꿈이 있으니 의지가 더 강하다는 말을 심리학자한테 들었다”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이러한 표현들이 장애인 당사자를 직접 비하하지 않는 관행적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의 불완전성을 장애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와 관련된 관행적 표현은 언론, 정치권 등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 신중히 사용되어야 한다.

2006년 12월 제61차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되고, 우리나라가 2008년 12월 비준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 8조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및 해로운 관행을 근절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2014년 11월 “과거로부터 답습해오던 부정적 용어와 표현행위로 불특정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화할 수 있어 인간 고유의 인격과 가치에 대해 낮게 평가할 수 있다”며 공적 영역에서 장애와 관련된 속담 등 관행적 표현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레임덕이라는 단어는 ‘장애인’과 ‘동물’을 타자화시키고 객체화한다.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표현으로 ‘공생(共生)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언어이다.

우리는 언어와 의식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의식은 언어에 의해 형성되는데, 언어 그리고 문자의 형성은 인간 의식을 발달시키고 추상적 사고행위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다음 세대에 경험·지식·사상을 전한다. 그렇기에 언어의 변화는 사고의 변화를 끌어낸다.

언어와 의식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다음 세대가 상호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대체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언어를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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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godiva@naver.com'
서은실
2 years ago

멋진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