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⓵] 코로나19, 불안과 공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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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더 인디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1월 말 중국 우한으로 전세기가 이륙하는 생중계 화면을 지켜볼 때까지만 해도 그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교민구출작전’인가 싶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설상가상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10일 자로 코로나19(CVID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매일같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영화 같은 현실’ 그 자체다.

사태는 이른 시일 내에 종식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표가 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의 실정은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15일 영국 공중보건국의 내부보고서는 “코로나19 사태는 향후 1년 동안 계속될 것이며, 영국 전 인구의 80%가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난해 미국이 3만7000명이 독감으로 사망했다. 매해 평균적으로 2만7천 명에서 7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하는 가운데서도 삶과 경제가 정지(shut down)되는 일은 없었다.”라고 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20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 위원장 또한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독감으로 매년 약 5000명이 사망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매년 전체 인구의 0.01%가량이 계절성 독감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이런저런 이유로 약 30여만 명이 사망한다. 2019년 한해 교통사고로 3,349명이 사망했고, 일터에서 산재 사고로 인정된 사망자만 855명이었다. 매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수도 1만 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 통계수치를 코로나19의 치명률과 견주어본다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게다가 이들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아닐뿐더러,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무관한 죽음도 아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는 공포의 대혼란에 빠져드는가. 호기롭게 트위터 글을 올렸던 트럼프는 왜 며칠 만에 국가비상사태와 전면적인 봉쇄정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코로나19가 ‘감염병’이라는 특징적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면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불안은 커진다. 강력한 전염력, 무증상감염 등 코로나19의 특징들은 “나도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라는 두려움을 유발한다. 신종 바이러스인 탓에 현재까지는 인류가 면역력이 없고,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은 불안을 더 키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의 또 다른 특징은 ‘피해 갈 수 없다’라는 점도 있다. 예컨대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 열병 같은 경우라면 가축들을 살처분하거나 먹지 않는 식으로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염병인 코로나19라면 다르다. 통상적인 사회에서 사람을 피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경제활동과 일상의 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런 외통수적인 상황에서 불안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불안이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늘 불안과 대면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면에서 불안은 인류문명 발전의 동기부여이기도 했다. 문제는 불안이 두려움과 공포로 바뀔 때다. 단지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이 있다거나, 피해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느껴진다고 해서 공포가 자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공포는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작동된다. 실제로 각국의 상황을 보면 같은 코로나19 사태임에도 각각의 통제력 여부에 따라 치명률도 다르고, 사회적 공포지수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거나, 불편하거나, 불안하거나,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등 제각각일 수 있다. 또 코로나19의 위험성이 과장되었다든지, 언론의 무차별적인 경마식 보도가 공포감을 부추긴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든, 당장의 생계위협에 대한 절박함이든 우리 사회에 코로나19로 인한 어떤 집단적 공포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사회는 집단적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미 벌어진 재난을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마주하는 것이다. 관건은 우리가 이 재난을 슬기롭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hlsanha@daum.net'
더 인디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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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bd601b854d@example.com'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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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sky4@nate.com'
최병훈
4 years ago

좋은글 감사합니다

kbg517@hanmail.net'
김발통
4 years ago

현상을 편안하게 분석하셧네요.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재난을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심 고맙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