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모든 이가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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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빌레라’ 홈페이지 화면 캡처
▲드라마 ‘나빌레라’ 홈페이지 화면 캡처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늙음’은 사람들에게 장애만큼이나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이젠 늙었나 보다’라는 혼잣말은 서글픈 탄식이기 일쑤며, 타인에게 ‘늙어 보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했다간 욕먹기 십상이다.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로 인해 성형이며 다이어트며 온갖 뷰티 산업은 늘 호황을 누리고 ‘동안’이란 말은 최고의 칭찬으로 여겨진다.

늙음은 비단 이 시대 우리만의 공포가 아니다. 학창 시절 옛사람의 시조 ‘탄로가(嘆老歌)’를 외우며 늙음에 대한 탄식을 먼저 배웠고, 늙지 않게 해준다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던 진시황의 탐욕을 익히 들어오지 않았던가.

‘늙음’, ‘노인’에 대한 공포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그의 영화 ‘더 비지트(The Visit, 2015)’를 통해 너무도 선연하게 보여 준 바 있다. 오래전 엄마의 가출로 끊어진 외조부모와의 연을 다시 잇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외조부모 댁을 방문하는 두 남매의 이야기라 따뜻한 가족영화일 것 같지만 공포, 스릴러다.

외조부모 댁을 찾아간 남매의 빅픽처는 엄마와 외조부모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화해와 용서의 가족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는 대부분 남매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장면들로 구성돼 있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점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시점을 획득한다. 낯선 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는 남매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은 그래서 훨씬 생생한 공포와 두려움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낮엔 자상하다가도 밤이면 온 집안을 좀비처럼 헤매다니는 할머니의 기묘함, 게다가 벽을 향해 혼자 돌아앉아 끊어질 듯 웃어젖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섬뜩하고 음산하다. 지독한 악취와 파리로 들끓는 헛간에서 멍하니 총기를 다듬는 할아버지, 그 곁에는 배설물 묻은 기저귀로 가득하다.

할머니의 설명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기저귀를 헛간에 몰래 쌓아두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란다. 다 큰 남자가 용변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기저귀를 차야만 하는 사실을 아내에게조차도 숨기고 싶어서 헛간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또 ‘노인들은 우울하므로 그 우울함을 들키기 싫어 그렇게 웃는 거’라며 자신의 기묘한 웃음에 대해 궁금해하는 손주에게 할머니는 그렇게 답한다.

노화를 상실, 결여, 비정상, 쓸모없음, 무기력 등으로 인식하는 것은 ‘장애’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들과도 맞닿아 있다.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 비지트’는 공포였다면 영화 ‘아무르(love, 2012)’는 비극이다.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혼자 돌보다 결국 아내의 안락사를 감행하는 남편의 이야기였다. 아무르라는 제목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음을 돕는, 인간의 또 다른 선택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표방하지만, 이 영화 역시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비극적으로 담겼다. 아내의 안락사를 감행하는 남편,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내, 이 두 부부에게 노화로 인해 겪는 신체적, 정신적 상실은 인간의 존엄마저 뒤흔드는 죽음보다 못한 고통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보는 내내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그럴 수만 있다면 결코 늙고 싶지 않고 격렬하게 노인이 되고 싶지 않아진다.

그러나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나빌레라’는 ‘늙음’에 대해 앞의 두 영화와는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요즘 유행하는 이런 노랫말처럼 나이나 노화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위로받았던 힐링 드라마였다.

실패와 좌절 앞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소위 말하는 ‘꼰대’처럼 지적하거나 충고하지도 않는다. ‘다 잘 될 거야’라는 속 빈 낙관으로 희망 고문을 하지도 않으며 어른으로서의 시대적 책임에 대해서도 눈 감지 않고 언제든 따뜻한 품을 내어 준다. 이 시대 바람직한 ‘어른’의 상을 따뜻하게 제시해 주었다. 심덕출 할아버지처럼이라면 ‘늙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특히,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을 무섭거나 불쌍하거나 짐스러운 존재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이 드라마가 보여준 최고의 장점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5세 노인 심덕출은 무기력하게 자기연민에만 빠져 있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출발선에 들어선 사람처럼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순간 다시 숨을 고르고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등으로 수없이 역할 지어진 자신이 아닌 본연의 자신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비로소 시작한다. 나락이고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설렘으로서 늙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날아올랐니?”

젊은 발레리노 채록과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통해 일방적으로 돌봄을 받거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수동적인 노인의 초라한 모습이 아닌 지혜롭고 따뜻한 멘토로서의 노인을 보여주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을 무조건 요양원에 보내는 결론이 아니라 가족,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이끈 점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알츠하이머를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질병이 아니라 늙으며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는 변화로, 늙어가면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요양원이 아닌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사는 모습을 통해서 탈시설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닳고 헐어가는 물건에 대해서는 ‘낡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같은 현상을 인간에 대해서는 ‘늙다’라고 한다. 왜 어떤 것은 ‘낡고’ 또 어떤 것은 ‘늙다’는 걸까. ‘나빌레라’가 보여주는 노인 심덕출의 모습에서 왜 인간의 나이 듦이 ‘낡은 것’이 아니라 ‘늙는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시간에 따라 어떤 것은 썩어 가지만 또 어떤 것은 ‘발효’되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썩고 낡아지는 것은 서글프지만 늙고 발효돼 가는 것은 서글프지 않다.

낡지 말고 늙어라! 썩지 말고 발효되도록 늘 돌아볼 일이다.
누구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채워 넣으려 애쓰지 말 일이다.
애초에 ‘정상’이란 기준 같은 것은 없으니까!
장애도 늙음도 그저 또 다른 모습이고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헛되이 나비가 되고자 애쓰지 말아라. 이미 ‘나비’니까!
그러니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나비처럼 날아오르던 심덕출 할아버지가 그의 온 ‘늙음’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설마 나만 들은 건 아니겠지!

[더이니고 THEINDI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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