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만든 비대면 수업 매뉴얼, 교육부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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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with:D'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시청각 장애학생을 위한 대학교 비대면 교육 운영 매뉴얼 연구를 위해 줌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손정우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with:D'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시청각 장애학생을 위한 대학교 비대면 교육 운영 매뉴얼 연구를 위해 줌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손정우
  • 시·청각 대학생이 겪는 온라인 수업… 동아리가 나서
  • 대면 수업을 받지 못한 20학번들이 적극 참여… 목차 구성만 한 달
  • “한 손에 잡히는 매뉴얼이다” 교육부, 전국 대학에 전달
  • 다양한 장애유형 등을 고려한 섬세한 매뉴얼 추가 개발 필요
  • 재활협회·서울대인권센터·장애인권동아리 위디(with: D) 공동협력

[더인디고 조성민] 다음 2학기에도 비대면 수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청각장애 대학생을 위한 비대면 교육 운영매뉴얼이 전국 대학으로 배포된다.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관계자는 2일 더인디고와의 전화 통화에서 “딱 한 손에 잡히는 매뉴얼”이라며 “시·청각 대학생을 위한 비대면 매뉴얼을 보는 순간 놀랍고, 감사했다. 대학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교수와 학생이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작권 문제만 없다면 곧 전국 대학에 배포해서 비대면 수업에 참고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대학교 비대면 교육 운영 매뉴얼’을 만든 주인공은 정부나 대학이 아닌 비대면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이다.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with:D(위디)’에서 활동하는 5명의 대학생은 비대면 수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작년 여름에 연구를 계획했다.

 ▲지난 5월 28일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서울대 인권동아리 'with:D'가 연구한 매뉴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장애인재활협회
▲지난 5월 28일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서울대 인권동아리 ‘with:D’가 연구한 매뉴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장애인재활협회

위디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한국장애인재활협회(재활협회)의 지원을 받아 ‘줌(ZOOM)을 이용하는 장애학생의 사례’를 중심으로 당사자 인터뷰와 문헌조사를 시작했다. 이어 재활협회가 운영하는 ‘청년포럼’ 회원들과의 논의 등을 거쳐 모든 대학에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로 만들어 냈다.

그 결과물이 지난 5월 28일 재활협회 주최로 열린 온라인 토론회에서 특수학과 교수와 국립특수교육원 및 시청각 대학생 등이 참여한 가운데 처음 공개된 것. 이날 토론회에 참석할 수 없어 미리 자료를 받아 본 교육부 관계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국 대학으로 배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대학교 비대면 교육 운영 매뉴얼’은 크게 제도적 지원과 ‘비대면 교육 강의지원’으로 구성됐다. 사진은 28이 발표 자료 일부다.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대학교 비대면 교육 운영 매뉴얼’은 크게 제도적 지원과 ‘비대면 교육 강의지원’으로 구성됐다. 사진은 28이 발표 자료 일부다.

더인디고는 교육부 관계자와 통화에 이어 매뉴얼을 제작한 위디 동아리 소속 5명 중 손정우(윤리교육학과)·최원빈(정치외교학부) 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시대에 입학한 ‘20학번’ 학생으로 2년 동안 대면 수업을 못 받고 있는 세대다.

■ 매뉴얼을 만든 계기

작년 1학기에 시·청각장애 대학생 등 학습권 침해에 관한 기사와 사례를 접하면서, 같은 비대면 교육을 경험하는 대학생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장애학생에 대한 대학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에서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는 점에 집중했다. 이에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주관하는 학생인권연구 공모전에 참여하여 매뉴얼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 연구를 진행하면서

비대면 교육 상황에서 시·청각장애 학생들이 겪는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파악한 선행연구가 부재하고 인터뷰 참여자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또한 코로나19로 대면회의 진행이 어려워 비대면으로 연구를 이어나갔다. 인권센터에 연구 결과물을 제출한 후에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대학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로 내용을 보완했다.

■ 매뉴얼을 간단히 소개하면

매뉴얼의 이행 주체는 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와 교수자다. 각 주체가 매뉴얼의 내용을 쉽게 파악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비대면 교육 강의지원’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지금은 목차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목차 구성에만 한 달을 고민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도적 지원’의 이행주체는 장애학생지원센터이며, 그 내용은 ‘교육지원인력 제도’와 ‘장애학생-교수자 소통창구’로 구성되어 있다. ‘비대면 교육 강의지원’의 이행주체는 교수자이며, 그 내용은 ‘수업 준비’, ‘실시간 수업’, ‘시험 및 과제’다.

이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첫째, 시각장애학생이 어려움을 겪는 ‘줌 채팅창’의 경우 ‘교수자는 수업 진행과 동시에 채팅창을 활용하지 않고, 채팅창만 단독으로 사용한다’는 항목을 만들었다.
둘째는 청각장애학생에게 필요한 실시간 수업지원 중 ‘실시간 속기 및 수어통역 지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장애학생이 선호하는 속기 방식에 대해 조사하고 이와 실시간 속기 프로그램에 대해 장애학생에게 안내함으로써 원활한 속기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대면 수업에서 쉽게 놓칠 수 있는 채팅창의 내용도 기록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셋째, ‘장애학생-교수자 소통창구’ 매개 역할에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중요하다고 판단, 대구대학교와 버클리대학의 ‘Letters of Accommodation’의 운영 사례를 참고했다. 예를 들면, 장애학생이 센터에 지원요청을 하면 센터에서는 ①센터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②교수자가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인가, ③지원요청의 내용이 구체화될 필요가 있는가 등을 고려하여 조정을 거친 후 교수자에게 전달하는 방안이다.

■ 연구결과 소감 / 비대면 학기를 보내면서

▲손정우 학생: 작년에 입학한 제게 코로나19는 대학로망을 앗아간 얄미운 존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장애학생의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이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올랐고, 연구를 하면서 일상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새롭게 알게 됐다.
사실 야심차게 시작한 연구지만, 저희가 개발한 매뉴얼이 전국적으로 배포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매뉴얼 적용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본 매뉴얼이 각 대학의 상황에 맞게 적용되어 대학이 장애학생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원빈 학생: 연구를 진행하면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기본적 권리를 보장 받으며 살아가기에 갖춰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코로나19라는 위기에서도 약자는 철저히 구별되어 모든 어려움을 혼자서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장애 의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함께 제안할 수 있었고, 작은 노력으로도 “사소하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한 명의 대학생이자, 시민으로서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자 한다.

■ 지난 5월 28일 토론회가 있었다. 보완할 것이 있다면

이번 연구의 매뉴얼이 모두를 위한 매뉴얼이 되기 위해서는 ‘장애정도와 장애유형’을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구어와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나뉘고, 또 구어와 수어를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잔존 청력의 정도에 따라서는 필요한 보조기기의 유형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장애 유형이더라도 개별적인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섬세한 매뉴얼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또한 저희가 만든 매뉴얼은 시·청각장애에 국한하여 만들어졌지만, 후속연구가 진행된다면 그 외에도 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유형을 포괄하는 매뉴얼이 제안 되었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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