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비하와 친근함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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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다/사진=픽사베이
지적하다/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우리 이모부님은 조카들을 부를 때 “똥개야?” 혹은 ” 순이 이년아!” 같은 표현을 사용하신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은 기본적인 품성을 의심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부르는 분이나 그렇게 불리는 누구도 그 호칭에 기분 나빠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는다.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함께 자리를 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런 애칭 속엔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애정이 담겨 있다.

때때로 “이모부님! 이제 저도 많이 컸는데 조금 예쁜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하며 살짝이 투정을 부리는 정도의 조카들은 있으나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그 표현에 논리와 이성을 담아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말을 내뱉은 사람의 의도가 단어가 가지는 사전 속 부정적 의미를 담았다기보다는 따뜻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부님께 인권 감수성 높은 표현을 쓸 것을 요청하는 것이 옳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행해야 하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말할 것이다. 묵인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에 굴복하거나 동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할 때 지금 우리 집에서는 어른의 표현이 옳은지 그른지 인권 감수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세세하게 따지는 일보다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의 예외적인 훈훈한 문화로 인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그런 표현들이 우리 가족 중 누구에겐가 심각한 상처로 남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가족 중 누군가가 그것은 언제나 따뜻한 표현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학습하여 그런 행동을 복제하고 답습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 모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현대인들이 대체로 합의한 예의 바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더 나은 언어생활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이모부님마저도 대부분의 공식적 자리에서 그러하실 것이 분명하다. 다만 가족 안에서 그 친근함의 표현이 조금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어느 때보다 비하 표현에 대한 지적의 날이 서 있는 듯하다. 외눈으로 보는 사람 같다느니 정신장애인 같다느니 치매 환자 같다느니 하는 표현들에 대해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과와 시정을 요구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장애나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다른 사람을 욕보이거나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해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큼은 그것들을 올바른 표현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 지적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지적을 위한 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할 때도 있다.

‘외눈으로 본다’는 표현은 굳이 생각하면 시각장애인과 관련지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표현을 쓰자마자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려는 목적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넌 왜 이렇게 시야가 좁니?”나 “내 말 잘 안 들리니?”라는 표현을 듣고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쉽게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긴 하지만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세세한 의미나 합의에 대해 몰라서 썼을 뿐 그것에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나쁜 의도가 있지는 않다.

장애는 치료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므로 극복보다는 적응이나 수용 같은 동사를 사용하시는 게 좋겠다고 권유할 수는 있겠지만 ‘극복’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뭔가 큰일이 난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장애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끼리는 ‘극복’과 비슷한 의미인 ‘장애 해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것은 실제로 장애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동일하지만 장애를 느끼지 못할 만큼 평화로운 세상을 열망한다는 수사적 표현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동화책이나 윤리 교과서처럼 예쁘고 바른말만을 사용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언어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단어들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현실적이고 예외적인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다.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향해 분기탱천한 감정을 표현할 때 “너는 매우 나쁜 일을 했어”라는 표현보다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건지 모르겠다”라는 표현이 직접적이지만 그것이 정신질환자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다.

레임덕이라는 말을 ‘임기 말 낮은 지지율 상태’로 바꾸고 성경책의 ‘소경’을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하여야 할 궁극적 미래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욕죄가 적용될 수 있는 욕설을 제외하면 그 어떤 표현도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그 쓰임이 숱하게 변하는 말들을 국회나 공공기관의 내규로 정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듣는 이가 불편하지 않고 듣기 좋은 표현을 쓰는 것을 권장하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기본 가치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성이 곧 약자성이 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비하 표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장애와 관련한 모든 단어를 그 대상의 비하로 몰아세우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들을 대하기 불편하고 어려운 집단으로 가둘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웃음거리로 삼지 않는 덩치 큰 사람들의 체형이나 어르신들이 가지는 신체적 어려움마저도 이따금 개그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장애와 관련한 것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장애와 관련된 용어들은 언젠가부터 성역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사용하면 안된다는 합의라도 있는 것 같다.

시각장애인끼리는 서로 뵈는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지체장애인끼리는 배변 실수한 것을 껄껄거리고 이야기하지만 다른 이들은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장애만큼은 장애인들만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것으로 가두고 절대 그 어떤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또 다른 벽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분명 이왕이면 좋은 말을 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말들이라도 그것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비하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과 격 없이 편한 말을 쓰는 세상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과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이분하는 날 선 평가를 자제했으면 좋겠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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