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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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다/사진=unsplash
숨쉬다/사진=unsplash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가를 묻는 말을 듣게 된다. 대단한 명예나 큰돈을 얻게 된 순간을 말하는 이도 있고 평생의 업적을 인정받게 된 말년의 수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수도 보았다. 많은 사람이 쫓는 가치들을 손에 쥔 그들의 발표에 사람들은 부러움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대단한 성취와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수줍게 나눈다.
첫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불러주던 날, 사글세 단칸방을 벗어나 방 두 칸짜리 월셋집에 들어가던 날, 아버지가 뒤를 잡아주던 두발자전거를 처음으로 혼자 타던 날을 이야기 하는 그들의 스토리는 평범하거나 때로는 너무도 소소하다. 하지만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환한 웃음과 감격에 젖은 목소리의 떨림은 그들은 분명 누구보다 행복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명한다.

어제 만난 어떤 이는 장애를 만난 것이 스스로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고 고백했다. 그럴 듯하게 보이려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주어진 다름에 감사를 느끼며 지금의 삶을 또 하나의 행운이라 여기고 있었다. 공감하기 힘들겠지만 다른 이의 생각이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본디 어려운 일이다.

보이지 않는 눈 가지고 살아가는 내 삶에 대한 다른 이의 평가는 대체로 안타까움이나 걱정에 가깝다. 경의를 표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남들보다 못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렇지만 난 평소에 무언가를 극복하려고 늘 애쓰는 감정을 가지지도 않고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들여서 어떤 것을 성취하려고 부단히 애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때때로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무섭게 집중하지만, 그것은 내가 장애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이고 다른 이들의 노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난 오늘 점심 반찬이 맛있는 것에 즐거워하고 우연히 접하게 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고 웃는다. 이번 주 칼럼의 조회 수가 유난히 높은 것에 희열을 느끼고 다음 주 유튜브 촬영에 만나고 싶던 게스트가 나오는 것에 가슴이 떨린다. 내 행복의 포인트는 굉장히 소박하지만, 행복의 크기는 작지 않다.

‘장애’라고 하는 나의 특성은 일반적으로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남들이 보는 아름다움을 함께하지 못하고 아무리 급해도 거리를 달리지도 못한다. 내 앞에 주어지는 서류의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당장 끓여 먹을 라면이 짜장라면인지 매운 라면인지도 알기가 어렵다.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큰돈을 버는 것이나 대단한 명예를 얻는 것으로 얻는 행복과도 대체로 거리가 멀다.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할 때도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서 나의 능력을 증명할 때도 ‘장애’는 역시나 긍정적인 작용을 보이지 않지만 난 분명 행복하다. 두 칸짜리 월세방에 대자로 누워 온 세상을 가진 듯 행복을 만끽하는 중년의 어른처럼 첫아이의 걸음마를 보고 전율하던 나이 많은 엄마처럼 난 다른 이들과는 다르지만 충분한 행복함을 누리며 산다.

대단한 명예가 행복의 기준이라면 그는 조금 더 대단한 다른 이의 성취 앞에 초라해질 것이고 많은 돈이 행복이라면 그의 행복은 끝없는 갈증으로 타들어 가겠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삶의 순간들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다.

행복은 고정된 것도 아니고 한 가지로 정의하여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게 주어진 또 하루의 아침이 있다는 것도 늘 곁에 있던 가족과 동료가 오늘도 함께 있다는 것도 행복이지만 배가 고픈 것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저녁의 피로마저도 건강한 감정을 누리는 나의 행복이다.

행복은 얼마나 큰 것을 누리는가보다는 얼마나 작은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지를 갖춰야 한다. 행복은 다른 이를 쫓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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