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역차별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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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의 여신상 / 사진 = 픽사베이
▲법과 정의의 여신상 / 사진 = 픽사베이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최근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의 ‘역차별론’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22일 <중앙일보> 칼럼에서 “2030 세대는 성별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을 겪지 않는다”며 “과거의 유산인 할당제와 불합리한 가산점제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역차별론’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정치인이고 보면 무슨 주장을 하든 선거전을 준비하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이해한다면 그다지 특별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저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여성이나 청년, 약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고, 약육강식의 원리, 그것이 곧 자연의 섭리라는 그의 논리는 공당의 대표의 주장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도를 넘고 있다는 느낌이다. 주로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들을 ‘역차별’이라는 굴레를 씌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차별’로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볼멘소리는 젊은 세대 중심으로 팽배해져 있고, 이런 현상은 ‘능력주의’라는 제법 공정하게 보이는 요술주머니에 담겨 다양한 논리로 변주된다.

‘역차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별’이 무엇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차별이란 모두가 동등함에도 ‘그 밖의 다른 요소’를 이유로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다르게 대우한다고 해서 무조건 차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장애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차별 등 차별이란 단어 앞에는 차별의 조건인 ‘그 밖의 다른 요소’가 적시된다. 다시 말해서 장애차별이란 단순히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고,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종교차별도 ‘그 밖의 다른 요소’가 차별의 이유가 된다. 장애가 있어서 능력이 없다거나, 여성이어서 힘이 없고, 흑인이어서 위험하고, 알라신을 믿어서 미개하다는 이유는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한자로 ‘역(逆)’은 ‘거스르다’, 또는 ‘거꾸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역차별이란 ‘그 밖의 다른 요소’가 없는 상태를 차별한다는 말이다. 장애차별의 역차별은 장애가 없는 상태를 차별하는 것일 테고, 성차별은 차별 받지 않은 성을 차별하는 것이고, 인종차별은 차별의 요소가 없는 인종을 되려 차별하는 것일 텐데, 이게 가능하기나 할까?

역차별의 대표적인 사례인 할당제는 그동안 차별을 받아 온 약자 집단을 최소한으로 우대하는 방식으로 기울어진 균형추를 맞추는 제도다. 지금까지 차별이 만연되어 불평등이 심각했다는 점과 그것을 시정하는 최선의 방법이 할당제 방식의 적극적 조치인 셈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일정한 비율의 장애인을 기업이 의무적으로 고용하게 함으로써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게끔 하는 제도다. 이런 적극적 조치마저 없다면 장애인의 삶의 질은 최저 생계비 수준조차 미치지 못하고 사회적 복지비용은 늘어갈 것이다.

기울어졌던 균형추를 수평으로 맞추려는 노력은 물리적으로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정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공정한 세상은 차별이 말끔히 사라진 세상이 아니라 차별을 하는 권력과 차별을 받는 피권력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동적인 과정이다. 역차별적이라고 비난받는 정책이나 제도가 도리어 공정을 이루기 위한 힘이고 도구인 셈인데, 공정하게 대우받고 싶다는 욕망은 공교롭게도 능력주의를 근거로 공정을 비난한다. 능력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차별일 수는 없지만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결코 공정한 세상 만들기의 전략일 수는 없다.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한다고 비장애인이 될 수 없고, 근력을 기른 여성이 남성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능력은 오히려 구조적 차별을 강화하고 정당화할 뿐이다. 약육강식의 정글화한 세상에서의 능력주의가 역차별을 타파하고 공정한 경쟁을 추동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준석들의 주장은 자신들은 이미 그 논리의 승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래서 당연하다. 그런데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툴툴대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승자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역차별이라 비난하면서 기성 체제의 최대 수혜를 받은 이준석들이 오히려 체제에서 낙오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풍경이 가히 기이하기까지 하다.

어쨌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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