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young의 쏘diversity] 쪽방촌 장애 거주민에게도 가을바람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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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거주민.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쪽방촌 거주민.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 UN CRPD와 사회이슈⑨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정치인들은 무더운 여름만 되면 연이어 쪽방촌을 찾아 물 뿌리기, 냉방용품 지급, 건강관리 등의 대책들을 내놓는다. 그들은 2020년에도, 2010년에도, 2000년에도 쪽방촌을 찾았고 여러 대책을 쏟아냈지만 2021년 오늘도 여전히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니 버티고 있다. 최근 달라진 세계의 기후는, 특히 서울의 여름은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쪽방촌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다.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이상고온 현상을 변변한 선풍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맞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상이 재난이었던 그들이지만,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무더위 쉼터마저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그야말로 이번 더위는 목숨을 위협하는 재난이 되었다. 화려한 도시 개발에 변두리로 밀린 그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쪽방촌에 사는 장애인의 삶은 어떨까.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거주민 실태조사 보고서>(2018)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 시내 네 군데에 쪽방촌이 분포해 있고, 3,296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장애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9.7%이다. 전체 인구 장애 출현율이 5%인 것에 비하면 장애인 중 얼마나 많은 인구가 헤어 나올 수 없는 빈곤과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다.

<쪽방 거주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관한 연구>(2015)는 장애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악화시키는지 설명하고 있다. ‘장애는 빈곤을 심화 시켜 참여자들을 쪽방으로 유입시킨 주요 원인이었으며, 탈 빈곤할 수단인 노동능력의 감소를 야기한 조건이었고, 결국 수급자로서 만성적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게 한 요인’인 것이다. 그나마 동 연구는 ‘이웃에서 찾은 희망’이 쪽방촌 거주 장애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했는데,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지금은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이제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무더위와 감염병, 들이닥치는 개발과 사회적 안전망 밖에 무방비로 놓인 자신들이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제28조(적절한 생활 수준과 사회환경)를 통해 적정한 수준의 의식주와 사회적 보호를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로 천명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양질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였으며, ‘인간정주선언’도 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사회권규약’ 제11조에서도 인간의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장애인의 권리를 특정하여 다루고 있는 ‘사회권규약 일반논평 5호’에서는 ‘장애인에게 적절한 식량, 접근성을 갖춘 주거, 기타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 ’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도 균형 잡힌 도시의 발전과 취약계층의 접근성, 안전, 권리, 복지를 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의 쪽방촌과 그곳 장애인의 삶은, 이 수많은 국제 선언과 법, 행동계획을 무색하게 한다. 당장의 무더위 쉼터 방역 강화와 안부 전화, 냉방기구 지급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의식주를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고 보장하고자 하는, 장애인을 포함한 빈곤층의 빈곤과 주거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시급하다.

요즘 ‘무더위와 코로나로부터 건강 잘 지키세요!’라는 인사를 자주 한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점점 무뎌져 이제는 단순한 인사치레쯤으로 여겨지는 말이지만, 쪽방촌 장애 거주민들에게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늘도 살아내자는 눈물겨운 각오나 결의, 혹은 두려움이나 무력감을 확인하는 힘겨운 한숨쯤이 아닐까. 쪽방촌에서 오늘도 버티고 있는 장애 거주민에게도 가을바람은 닿을 것이다. 다만 이 바람이 또다시 한겨울 동사(凍死)를 걱정해야 하는 서늘하고 두려운 전조가 아닌, 따갑게 달궈진 공간과 마음을 식혀주는 선선한 바람이 되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 도시빈곤층의 공동체 형성 고찰-서울시 쪽방밀집지역 저렴쪽방 중심으로, 서울연구원, 2019, 하춘
– 쪽방거주 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관한 연구, 전지혜 등, 사회복지연구 제46권 제2호, 2015
–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건물실태 및 거주민 실태조사 보고서, 2018, 서울시
– 코로나19와 쪽방촌: 동자동 쪽방촌 사례발표, 강준모

[더인디고 THE 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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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unkim@gmail.com'
제니킴
2 years ago

소영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