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young의 쏘diversity] 수치(figure)의 수치(hum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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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해산 결정을 위한 총투표 개표결과 공고. 사진=김소영 집필위원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해산 결정을 위한 총투표 개표결과 공고. 사진=김소영 집필위원
  • 소소: 소수의 소리⑦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경희대학교에 커다란 공고가 붙었다. 2021년 9월 27일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실제 활동이 없던 기구였고, 많은 대학교에서 총여학생회가 폐지되고 성평등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대학 내 성차별, 성폭력, 인권 문제를 다루는 대안 기구를 마련해 왔기에 자연스런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또 의미 있는 것은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의 유권자를 총여학생회 정회원, 그러니까 여학우들로 구성하였다고 했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형식뿐인 기구를 정리하고 실체가 있는 성평등 기구 구성을 위해 행동한 것으로 보였다.

▲경희대학교 대자보. 사진=김소영 집필위원
▲경희대학교 대자보. 사진=김소영 집필위원

비슷한 시기에 중앙대학교는 성평등위원회를 해산시켰다.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불을 붙인 학생의 주장은 학교 내에는 더 이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평등위원회의 활동이 오히려 남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 연서명을 받아 부쳐진 이 안건은, 충분한 공론도 거치지 않았고, 대안기구에 대한 논의도 부결시킨 채 졸속으로 가결됐다. 101명만이 투표하였고, 찬성은 59표였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나 절차, 대안, 어느 것 하나 이해되지 않는, 그야말로 시간을 역행한 사건이다.

중앙대학교 학생은 2만 명이 넘는다. 2만 명 중 101명의 학생만이 참여했으며, 101명 중 다수가 찬성했다는 이유로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된 모양새는 지성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101명의 학생이 2만 명이 넘는 학생을 대변할 수는 없다. 또한 소수자를 위한 학생자치기구를 대표성도 없는 학생 일부 중 다수가 찬성했다는 이유로 해산한다는 것은 애초에 기구를 설립한 정신과 맞지 않는다. 장애학생회 존폐투표를 진행한다고 치자. 다수인 비장애학생과 소수인 장애학생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 그 결과를 반영한다면 그 결과는 공정한 것인가? 또 장애학생을 위해 진행하는 장애학생회의 사업은 비장애학생을 배제했으므로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학교에서 여성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학교 내에서 교수, 학생들에 의한 성희롱, 여성 혐오 등에 노출되는 것은 인터넷 뉴스나 커뮤니티를 조금만 접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 성평등 지수가 이를 아주 잘 증명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2020년 발표한 국가성평등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Gender Inequality Index(GII) 점수는 2019년 기준 0.064점으로 11위를 차지했다. 이 지표만 보았을 때 우리나라 성 격차는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GII에서 높은 순위인 이유는 GII에서 측정하는 생식건강, 특히 청소년 출산율이 압도적으로 낮은 덕분이었다. 이는 다른 지표와의 비교를 통해 증명된다. 기대여명, 기대교육과 평균교육연수, 성별추정소득을 측정하는 Gender Development Index(GDI)에서는 189개국 중 111위로 하위권이다. 기대여명과 기대교육, 교육연수 그리고 추정소득을 측정한, 그러니까 GDI에서 젠더 구분을 제외한 지표, Human Development Index(HDI)는 189개국 중 23위인데, 젠더구분이 들어가는 순간 111위로 하락한다. 또한 절대값이 아닌 남성과 비교한 상대값을 측정하는 지표인 Gender Gap Index(GGI)에서도 대한민국은 2020년 156개국 중 102위를 차지한다. 이 지표는 경제참여 기회, 교육성취, 건강과 생존, 정치권한을 측정하는데, 경제와 정치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참여율이 턱없이 낮음이 드러났다. 여성운동이 활발해지고, 여성의 교육 및 사회진출의 절대적 수치는 늘어났지만, 그 수치를 대한민국 남성과 비교했을 때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이다. 이 수치(figure)가 내가 사는 현실의 수치(humiliation)였다.

우리 세상이 성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 세상에는 나와 내 친구들에게 면접 자리에서 ‘마스크 벗으니까 보기 좋네~’ 라며 웃는 남성 면접관의 성희롱이나, ‘너 페미니스트야?’라며 사상 검증을(?) 하는 여성 혐오를 견뎌야 하거나, 남성의 사진만 걸려있는 ‘역대 회장’의 벽면을 보며 유리천장의 존재를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일이 없는지 말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성폭력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며 피해자의 입을 막아버리거나,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대선주자의 공약을 들을 일도 없을 테니까.

[더인디고 THE 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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