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깍두기로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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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앉은 5개의 피규어. 사진=픽사베이
▲테이블 앞에 앉은 5개의 피규어.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더인디고 편집장

유난히 하늘빛이 선연히 푸르던 어느 휴일 오후, 소일삼아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광경을 물끄러미 구경한 적이 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둘러서서 놀이를 위한 편 가르기를 하는 지 한 아이의 구호에 맞춰 손바닥과 손등을 번갈아 내민다. 곧 닥칠 놀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이들의 낯빛은 한껏 상기되어 붉었고 이미 다른 놀이에 어지간히 기운을 뺐는지 귀밑머리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이면도로 한 끝에 옹색하게 남은 경사진 자투리 공간을 놀이터 삼은 아이들은 편가르기도 일사천리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유독 키가 작고 어려보이는 한 아이는 편가르기에 끼어들지 못한 채 발끝으로 땅을 차며 쭈뼛거리고 서 있을 뿐이다. 그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너는 그냥 깍두기 해!!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요즘 아이들도 깍두기를 아네? 좀 놀랍고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깍두기’는 어릴 적 돌볼 동생을 혹처럼 붙이고 놀이에 나선 친구들이 어린 동생을 슬쩍 끼워주고 부르던 명칭이었기 때문이다. 깍두기들은 놀이에 정식으로 낄 만큼 익숙하지 않아 규칙을 망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깍두기의 실수는 용인되고, 어쩌다 드러내는 승리에의 기여조차도 우연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래서 깍두기는 놀이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그림자 같은 존재이고, 있어도 없는 열외자이다. 그런 존재를 왜 하필 깍두기라 칭했을까?

무를 정육면체로 썰어 소금과 고춧가루에 버무린 음식인 깍두기는 조선시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영의정 홍현주에게 시집 간 정조의 딸 숙선옹주가 처음으로 만들어 왕인 아버지에게 바쳤고 이를 맛보고 칭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니, 1800년대 초기의 음식이라 하겠다. 이후 깍두기는 무를 주재료로 해서 오이 깍두기, 굴 깍두기, 쑥 깍두기, 닭 깍두기 등 다양하게 변용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시의전서(是議全書)라는 요리책에도 소개되었다. 당시에는 각독기(刻毒氣)라 불렀으며, 그 후 양반가 외에도 평민들에게 전해져 모두 함께 즐긴 대중적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 깍두기는 김치 축에도 끼지 못하는 허드렛 반찬쯤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공주가 아닌 옹주가 처음 만들어 진상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양반들이 입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든 사람의 신분 탓에 애궂은 음식이 천시받은 셈이다.

장애계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낯설고 황당한 풍경을 어지간히 겪어온 터라 이제는 나름 이골이 났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국가의 장애인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가 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주장하고 설계해 제도화하고 나면 참 신기하게도 정작 그 제도의 대상인 장애인 당사자는 깍두기처럼 대상자 노릇만 하게 되는 거다. 이른바 복지서비스가 개발되면 서비스 내용과 대상이 정해지고 전달체계가 마련되는데,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에게는 서비스 수요자 역할만 주어진다. 그리고는 전달체계의 주도권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장애를 의심받고 심사받으며, 서비스를 받는 내내 지속적으로 감시받는다. 이렇다 보니 서비스 신청 심사에 일찌감치 지치거나, 서비스 받는 과정이 굴욕적이어서 포기하게 되고 결국 이용자 없는 전달체계만 남아 종사자들의 밥벌이로 전락한다.

예를 들어볼까. 장애인주치의제도는 장애인의 열악한 건강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꽤 구체적이고 그 목적이 분명한 제도이다. 쉽게 말해서 장애인 당사자가 병원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제도가 시행되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장애인의 병원 출입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 단순하고 간명한 목적조차 모호해졌다. 소위 전문가들과 정부의 이해 관계 틈바구니에서 정작 당사자들은 깍두기가 되어 제도의 외곽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깍두기가 되는 경우는 또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불거지는 장애인 학대는 인권국가를 표방한 정부 입장에서는 꽤나 곤혹스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실체적 고통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드러나면 고통을 당한 당사자는 깍두기가 되고 학대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소위 관계자들의 논란으로만 부각되다가 흐리마리 잊힌다.

양반가에서 천시 받던 깍두기는 몇 점만 집어먹어도 배가 불러서 밥 대신 무로 배를 채워야 할 만큼 가난한 백성들이 즐겨 먹던 찬거리가 되었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꽤나 유용했을 깍두기는 후에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이 깍두기 역할은 짝이 맞지 않은 놀이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참여’를 실천케 하는 대안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아이들의 놀이에서조차 참여는 그들만의 공동체 일원으로써의 승인을 받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인데, 깍두기란 존재로 포괄적 참여를 암묵적으로 규칙화했다는 것이다.

옳거니!!! 깍두기를 일원으로 했던 무리가 깍두기의 활약으로 놀이에서 이겼다. 환호하는 아이들 사이에 작고 왜소한 깍두기의 웃음소리가 사위를 가득 메웠다. 모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선물로 받은 듯 흐믓한 기분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래, 깍두기가 되어도 좋다. 다만 깍두기인 우리도 아이들조차 아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나마 헛된 희망으로만 살지 않은 방법은 끊임없이 깍두기도 김치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되새기게 해야 한다는 거다.

깍두기도 김치라니까!!!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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