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신세계를 향한 발칙한 ‘상상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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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쏘아 보낼 원통원뿔형 포탄. 출처=위키피디어 ‘지구에서 달까지’ 삽화
▲달에 쏘아 보낼 원통원뿔형 포탄. 출처=위키피디어 ‘지구에서 달까지’ 삽화

[더인디고=이용석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더인디고 편집장

1968년 12월 미지의 공간이었던 달을 방문하고 무사히 귀환한 아폴로 8호 선장인 프랭크 보먼은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손자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의 우주선(아폴로 8호)은 바비케인의 우주선과 마찬가지로 플로리다에서 발사되었습니다. 지구로 돌아와 태평양에서 착수한 지점은 소설에서 나온 곳에서 겨우 4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보먼의 편지는 100년 후 달나라 여행을 상상한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쓴 쥘 베른에 대한 경의로 가득했다. 바비케인은 비록 소설 속에서지만 자신보다 무려 100년 앞서 달에 첫 발을 디딘 인물이다.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될 미래를 꿈꾼 몽상가들은 자신이 상상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개척자들임에 틀림없다. 세상에서 가장 큰 대포를 만들어 포탄을 타고 달로 간다는 황당무계한 공상으로 가득한 <지구에서 달까지>는 1865년 발표 당시만 해도 세간의 비웃음거리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달나라 여행을 상상했던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는 로켓 추진 원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로켓 방정식’을 제시하고 실제 달나라 여행을 위한 우주 비행의 핵심 원리를 만들었다. 이제 달은 그저 토끼가 방아 찧는 미지의 밤하늘 한 공간에서 새로운 우주 탐사를 위한 가능성이 되었다.

이렇듯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는 첫 걸음이자 원동력이다. 비단 과학 분야에서만 괴짜들의 상상력이 힘을 발휘했던 것만은 아니다. 요즘 유력한 대선주자의 주요 공약에서 비롯된 기본소득은 16세기 초 최소소득으로, 재난지원금과 같은 조건 없는 일회적 급부는 18세기 말에, 그리고 이 두 가지 방식이 결합된 기본소득이란 아이디어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물론 그 목적은 모두 빈민구제였다. 요하네스 루도비쿠스 비베스가 주장했다는 최소소득은 공공부조의 원형이며 빈민구제의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유사하다. 조건 없는 일회적 급부는 우리도 재난지원금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고 어쩌면 기본소득이라는 구체적인 국민의 소득보장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종의 실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1년 보건복지포럼 4월호)은 장애인의 가구 노동소득 평균이 비장애인 가구에 비해 44~50%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소득의 격차는 당연하게도 빈곤율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현격한 격차조차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장애인연금 등 기왕의 공적소득보장이 없었다면 더 큰 차이가 났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애’라는 삶의 조건이 빈곤을 면할 수 없는 계층으로 규정되는 필요조건이고, 그 속에서만 생존해야 하는 살이(生)의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충분조건이라면 이 두 조건을 깨뜨릴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매년 5년씩 오는 대통령선거라는 이벤트는 ‘장애’라는 조건 속에서도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충분조건을 상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모든 장애인을 포괄하는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장애인 공적소득보장제도로써의 ‘장애인 평등기초소득’을 제도화하는 권력의 선택을 말이다. 공적소득을 통해서라도 점점 심화되고 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득 및 빈곤의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장애인의 빈곤은 부동산 문제와 함께 우리사회의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얼마 전 베를린은 3000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민간업체들의 부동산 24만 채를 몰수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자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시민들이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세상에 몰수라니… 자본주의의 신성불가침한 영역이었던 사적 소유를 몰수하자는 이 발칙한 상상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주택임대료 문제에 직면한 베를린 시민들을 온건한 대안 대신에 과감한 정치적 행위를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이른바 도이체보넨(11만채를 보유한 민간부동산업체 이름) 몰수 운동은 베를린 시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살고 싶은 ‘다른 세계’를 마음껏 상상하게 했고, 급기야 주민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다른 세계’를 직접 만들기로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렇듯 상상력은 달나라 여행을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적 소유물을 ‘몰수’하게도 한다. 두 상상력 모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염원이기에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고, 비로소 실현되었을 것이다. 자, 우리도 절실하게, 그리고 발칙하게 상상하자. 평등한 세상을 향한 단 한 번의 첫 걸음을 말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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