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갑(甲)을 향한 연대의 질문

0
111
▲Who Are You, 사진=언스플래쉬
▲Who Are You, 사진=언스플래쉬

[더인디고=이용석편집장]

당신, 사람이야?

이용석 편집장
더인디고 편집장

질문이 도발적이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사람에게 사람인지를 묻는 꼴이라니, 참 칠칠치 못하고 괜한 시비라도 걸 셈인가 싶은 생뚱맞은 물음이다. 세상에 사람에게 사람이냐고 묻다니, 저질의 농담을 듣는 것 마냥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왠지 그 뒷맛은 씁쓸하고 영 개운치 않다. 왜 나는,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는 질문에 입맛이 쓰고 떠름할까?

사람인지를 묻는 질문은 여성에게 여성이냐고 묻거나 장애인에게 장애인이냐고 묻는 것과는 그 어감이나 의미가 사뭇 다르다. 여성이냐고, 장애인이냐고 묻는 질문은 ‘성적 정체성’과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속셈이 노골적이지만, 사람에게 사람이냐고 묻는 행위는 ‘사람됨’ 즉 동물과 구별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특징을 확인하는 당돌한 궁금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 혹은 사람됨을 묻는 질문은 당신에게 ‘사회적 성원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갑(甲)의 질문인 것이다.

‘사회적 성원권’이란 당신이 사회의 일원인지 여부를 확인해 구별하는 범주일텐데 인류학자인 김현경은 자신의 저서인 <사람, 장소, 환대>를 통해 정의한다. 인도의 불가촉천민 달리트를 비롯해 태아, 노예, 군인, 수감인, 전염병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은 ‘사회적 성원권’ 밖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열외자인 셈인데, 세상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선언해 놓고서는 누군가에게는 끊임없이 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으로 배제와 차별의 근거를 찾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탐색인 것이다. 나이와 성별, 장애의 유무, 권력과 소득이라는 조건의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며 당신이 무엇이든, 어디에 있든, 그러니까 살인자든, 강간범이든, 거짓말쟁이든, 감옥에 있든, 아니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기준으로는 미덥지 않는 인간들, 이를테면 달리트, 동성애자, 장애인, 노예에게 환대(歡待)를 해도 되는지를 묻고 또 묻는다는 것이다.

당신, 장애인이야?

장애를 증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녹록하지 않다. 내가 가진 신체적, 정신적 조건이 얼마나 취약하고 손상을 입었는지를 질문자에게 드러내야 하고, 애원해야 한다. 이 드러냄과 애원은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모욕적이지만 견뎌야 하고, 구차하지만 어쩔 수 없기에 체념을 낳는다. 장애 증명을 요구하는 방식이 의료적이든 사회적이든 그 조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장애를 가진 신체나 정신의 사람인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은 재분배 때문이며, 재분배의 대상이 되기 위한 장애 연기를 암묵적으로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은 김현경이 정의한 ‘사회적 성원권’의 일원으로 구별 짓는 조건조차도 그리 적합하지 않기에 당신, 사람이야? 라는 질문이 오히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질문처럼 상냥하게 들릴 지경이다.

다른 사람들의 사람증명을 통해서야 비로소 사람으로 규정된다고 한다면 끊임없이 타인들 속에서 스스로가 사람이라는 존재론적 제스처를 강요받게 되는 것처럼 장애인이냐고 묻는 질문 속에서는 존재론적 자기증명 대신에 장애인으로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다급한 ‘짓’만 남는다. 김현경은 “공공의 강화가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 대한 환대가 가능한 사회로 가는 방법”이라면서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 일,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일,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 모두 환대의 다양한 형식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환대가 가능한 사회를 위한 공공의 강화가 오히려 장애인에게는 장애증명을 강요받는 이유가 된다.
사람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장애를 증명하지 않아도 환대받는 사회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오히려 환대받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성원권을 구성하는 것. 약자이면서 약점이 같은 사람들의 연대, 여성, 장애인들은 이러한 연대를 통해서 우리만의 성원권에서 세상을 향해 갑의 질문을 맘껏 던져보면 어떨까.

당신들은 누구야?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승인
알림
662c349fb7590@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