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잘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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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픽사베이
▲에스컬레이터/ⓒ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자주 다니던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가 잠시 운행이 정지되었나 보다. 살짝 다리를 올려놓아도 이 기계가 자동으로 나를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찰나 뒤따라 오던 낯선 남자분이 황급하게 “위험해요!”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나를 끌어당기신다. ‘뭔가 지나가서는 안 되는 장애물이라도 생긴 건가?’라고 생각하는 내게 그분이 건넨 말은 “에스컬레이터가 멈췄어요.”라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안내했다.

평소와 다르게 동작하는 에스컬레이터와 그 앞을 지나려는 지팡이 짚은 사람을 동시에 본 남자의 판단은 ‘안전하지 않으니 급히 알려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겠지만 난 지팡이 끝의 느낌만으로 조금 달라진 보행로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파악한 상태이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 난 순간적인 두려움을 느꼈고 그것은 나의 보행 상황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약간의 혼란을 일으키는 쪽으로 작용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모르고 그런 것이고 착한 마음이 발현된 것이니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몇 걸음 더 걸어가서 또 다른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려는데 같은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험해요!” 그리고 이어서 강하게 내 가방을 뒤로 잡아당기는 그 행동도 반복되었다. 이번엔 그 때문에 정말 위험해질 뻔했다.

난 눈이 보이지 않아도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발끝의 감각과 지팡이를 이용하면 그것을 탑승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다. 특히 하루에도 여러 번 그런 작업을 반복하는 나에겐 그건 그냥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불편해 보일 수도 있고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들의 생각일 뿐 내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잘 가고 있는 나를 갑자기 끌어당기거나 하면 위험해지기도 하고 방향 감각을 잃기도 한다.

난 눈으로 보고 걷는 이들보다 대체로 느리다. 작은 골목을 찾기 위해서는 벽 끝까지 가서 지팡이를 부딪쳐 봐야 정확히 내가 갈 곳을 인지하고 방향을 잡는다. 보는 사람이라면 굳이 더 가지 않아도 될 길을 내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몇 발자국 더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건 좀 더디지만 내가 길을 찾고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고 난 늘 그렇게 잘 다닌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그런 나의 보행이 참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 보이는가 보다. 벽에 닿기도 전에 팔이나 지팡이를 잡아당겨서 골목으로 밀어 넣고 아무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소리를 지른다. 난 그런 도움과 관심들 속에서 경로를 잃고 방향을 놓친다.

난 대체로 잘 가고 있다. 다른 이들도 조금만 기다리고 지켜보면 내가 내 방식대로 전혀 불편하거나 위험하지 않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본인처럼이 아니라서 그 작은 시간을 기다리고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꽃은 같은 계절에 같은 모양의 꽃을 같은 속도로 피워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른 열매를 맺고 다른 아름다움을 만든다. 우리도 그렇다. 아이에겐 아이의 방법이 어른에겐 어른의 시간이 나에겐 내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기에 때때로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대체로 난 잘 가고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방식대로 나를 도우려고 하는 건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불편하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각자의 방법과 시간이 있다. 조금만 존중하고 기다려주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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