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어른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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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시간/사진=픽사베이
▲성장하는 시간/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매번 시험도 잘 보고 그러셨어요? 힘든 것 그런 건 없으셨나요?”

기말고사를 목전에 두고 피곤함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한 제자가 질문을 건넨다.

“시험이야 뭐 쉬엄쉬엄 봐도 백 점 맞고 그러는 거 아니니?”

진지하게 위로를 건네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그 어떤 말도 특별한 힘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잠시라도 웃게 해 주리라는 맘으로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예습은 못 해도 복습은 꼭 해야 해!”

“이건 중요한 거니까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꼭 외워야 해.”

“하루 10분만 투자하면 배운 내용 다 기억할 수 있어.”

“수업 시간에만 열심히 들으면 평소 실력으로도 시험은 얼마든지 잘 볼 수 있어.”

이것만, 이것만 하면서 별것도 아닌 듯 학생들에게 당부하지만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학생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나이 때의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리 조금씩만 하면 나중에 큰 고생 안 해도 된다는 걸 모르는 아이들은 없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좋아하는 영상도 챙겨봐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좀 쉬기도 해야 한다. 별로 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엊그제 본 것 같은 시험은 또 다시 찾아온다.

오늘의 내 제자들에게도 그렇겠지만 학창 시절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 안 하고 시험 걱정하기가 취미였고 벼락치기는 거역할 수 없는 특기였다. 그렇게 어찌어찌 지내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학생은 교사가 되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굳게 마음에 새겼거나 어떤 특별한 계기로 삶의 태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꾼 것도 아닌데 어른이 되어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다. 언젠가 내가 듣던 선생님의 말씀들을 내 입으로 제자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지만, 난 여전히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되풀이하고 있다.

서류 제출은 마감날 마감 시간을 겨우 지키는 아슬아슬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어머니 말씀이나 선배들의 조언을 바로바로 실천하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아이들 앞에만 서면 어른이라는 자격으로 잘난 척 하고 조언한다.

“선생님은 공부하는 게 힘들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에 나도 다르지 않았다고 대답했어야 했다. 몸이 자라고 나이가 들면서 어쩌다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조언을 듣고 또 많은 경험을 해서 나아지고 바뀐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순간 완벽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어른이 될 수 있는 자격시험을 본 적도 없고 이 정도면 어른답다고 하는 임명장을 받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대로 살지를 못해서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거나 그 때문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진심으로 깨닫고 있는 중도 아니다. 조금 더 먼저 태어났을 뿐이고 어른처럼 보이는 옷을 입었을 뿐인데 난 어느 순간 내가 충분한 어른 자격을 갖추었다고 착각하고 지내면서 살았다.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살 수 있을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만, 내 삶도 전혀 완벽하지 않다. 그냥 그 전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 전 어른들처럼 반복하고 있다. 나도 때로는 시험을 망쳤고, 많은 후회를 했다. 난 처음부터 학생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해야 했다.

어른 흉내를 내면서 어른처럼 가르치고 조언하는 것이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 가르침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배운 것을 하루 10분만이라도 꾸준히 복습하는 것은 나에게도 아직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힘듦을 견디는 것은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난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제자들보다 조금은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지만 나도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처럼 하면 돼”보다 “어렵지만,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라고 이야기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무자격 어른의 무자격 조언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얘들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살다 보니 다 그렇게 살아지더라!”

오늘은 그런 위로를 건네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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