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지금 그대로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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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지/사진=픽사베이
▲목초지/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선생님! 늘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비결이 뭐예요?”

기자님의 질문에 나 스스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긍정적이긴 한 건가?’,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 일단 그런 거로 하고 그럼 비결이 뭐지?’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취미생활들로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을 많이 갖는 편이라고 이야기하려 했다가 이건 질문자가 원하는 명확한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묻는 것은 일반적인 밝은 성격에 대해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에 비해 좋은 것이 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전제를 깔고 나면 내 삶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극히 드문 상황이 아니면 긍정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난 모두가 명확히 부족함이라고 정의하는 시력상실의 상태를 작은 다름일 뿐이라고 정의하고 논리적 근거를 만들고 확신하고 주장하는 일을 삶으로 반복한다.

나는 점자를 손으로 촉지하지만,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의 독서이다. 난 상대방의 체형이나 인상을 보지 못하지만, 목소리와 그가 주는 다른 느낌으로 그를 기억하고 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직장에서도 눈으로 보고 일을 하는 대신에 듣고 만지고 뛰어다니면서 일을 한다.

자기소개를 할 때도, 취업할 때도, 이성에게 구애할 때도 보이지 않는 나의 작은 다름을 나 스스로가 부족함이라 여긴다면 난 늘 열등감에 근거한 우울함 속에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난 끊임없이 그것은 단지 다를 뿐이라고 되뇌고 다짐한다. 누군가는 그것은 허구이고 자기최면일 뿐이라고 얘기하겠지만, 본디부터 더 낫거나 더 나쁜 것은 없다. 많은 사람이 시력을 가졌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을 상실의 상태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불이 켜지지 않은 곳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틈의 물건들을 다른 감각들을 사용해서 파악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런 섬세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다시 보게 된다면 그런 감각들은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릴 수 있지만, 난 그것들을 상실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어떤 상태로 변했다고 여기고 그 상태를 또 다른 긍정의 상태로 여길 것이다.

볼 수 있다가 보지 못하게 되는 것, 섬세한 감각을 가졌다가 잃게 되는 것 모두 상실이지만 사람들은 다수의 상태를 기준으로 전자를 장애라 여기고 후자는 회복의 기적이라 부른다. 모두가 의학 공부를 하는 의사라면 그런 단호하고 일방적인 정의가 의미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는 모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단지 조금 다른 상태로 변하고 또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늘 변하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훨씬 유리하다.

‘보는 것은 만지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는 애초부터 참인지 거짓인지를 논할 수 있는 명제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나의 다른 상태를 ‘장애’라 정의하고 부족함이라 여기기 때문에 난 그 잘못된 판단들과 맞서서 내 상태는 부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훈련을 본능적으로 반복한다. 그것들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힘이 된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긍정적이고 밝게 살고 있다면 그런 훈련들 덕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난 내 인터뷰에 스스로 큰 만족을 느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내 주장을 괴변이라 여길 것을 안다. 그런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성숙하고 완숙하게 변해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쇠약해지고 늙어가는 죽음을 목표로 하는 삶을 살 것인가?”

“사랑의 호르몬이 날이 갈수록 줄어가는 연애를 할 것인가? 조금 다른 모양의 가까움을 느낄 수 있는 교제를 할 것인가?”

“가진 음식을 상실해 가는 식사를 할 것인가?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는 작업을 할 것인가?”

그것은 철저하게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삶은 어떤 정해진 완벽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행복을 변화하는 다름 속에서 끝없이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것은 어떤 상황 어떤 모양 속에서도 가능하다. 내가 가진 다름을 단지 다름이라고 느끼고 말하고 확신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항상 긍정적일 수 있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행복할 수 있다.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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