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같이 쓰레기 치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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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공원/©더인디고
▲한강 공원/©더인디고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한강 가까운 동네에 있던 어릴 적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일정한 때가 되면 환경보호 활동의 하나로 둔치 공원의 쓰레기를 주웠다. 3천 명쯤 되던 전교생의 작은 손에 들려있던 쓰레기봉투가 하나씩 채워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맙시다.”라는 초록색 푯말이 군데군데 꽂혀 있긴 했지만, 그 문장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어른들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스스로 먹은 빈 병이나 캔 따위를 챙겨서 들고 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별나다고 손가락질받던 그런 때였다.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려도, 씹던 껌을 아무 데나 뱉어도 큰 처벌이 있거나 특별히 비난하지는 않았다. 공원에 가구나 가전기기가 버려져 있는 것이나 강물에서 장화 한쪽이 떠다니는 것은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어도 굳이 색출해서 벌금을 부과하거나 할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버리는 어른들의 손이 치우는 아이들의 고사리손보다 훨씬 더 커서 넓은 그곳이 드라마틱하게 깨끗해질 리가 없었다. 몇 톤급인지도 모르게 큰 트럭 몇 대가 잔뜩 쓰레기를 싣고 지나는 순간엔 공익광고에나 나올 것 같은 초록의 잔디와 푸르른 강물이 짠! 하고 나타나기도 했지만 큰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한강 둔치는 본래의 모습이 그랬던 듯 난지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졸업을 앞둔 6학년 때도 우리는 쓰레기를 주웠지만, 교과서에 담겨 있는 한강 사진은 여전히 오염된 자연의 시그니처였다. 내가 먹던 물이 약수터의 약수에서 마트 진열장의 생수로 조금씩 바뀌어 가던 어느 날쯤부터 난 ‘세상이 정말 깨끗해지기는 하는 걸까?’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연보호”는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처럼 초등학교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순진한 이상이라는 쪽으로 생각의 추가 기울어갔다.

선생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쓰레기는 주웠지만, 그 행위가 목표하는 궁극적 이상에 대한 믿음은 점점 희미해져 장애인으로 살면서 장애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마주할 때 난 그때의 봉사활동을 떠올리곤 한다. 조그만 손으로 쓰레기를 치워가듯 난 작은 움직임들로 조금씩이라도 장애에 대한 바른 생각들을 퍼뜨리려 노력한다. 말로 하고, 글로 쓰고, 방송에 나가고, 강연하고, 노래하는 동안 사람들의 생각들이 바뀌어 가는 것은 초록의 잔디를 마주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다.

아스팔트 위에 납작하게 붙어서 떼어지지 않던 껌딱지처럼 변하지 않는 인식들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나는 그 순간만큼은 쓰레기가 치워진 파란 강물처럼 푸르다. 왜곡된 마음들을 치워내고 씻어내는 것은 쓰레기 줍던 연례행사와는 다르게 내 삶 그 자체이므로 난 매일매일 매 순간을 다른 이의 마음 청소하는 것에 집중한다.

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장소를 다니면서 난 스스로 기특하다 여길 만큼 분주하게 활동한다. 따뜻한 마음들은 알지 못했던 장애에 대해 조금이나마 바르게 알게 되었다며 메시지로 댓글로 감사함을 표한다. 그런 응원들은 오래전 선생님의 칭찬처럼 나를 더 많이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인식의 개선”이라는 것이 어릴 적 쓰레기 줍는 활동과 이렇게 좋은 것들만 닮아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이 녀석은 불편한 부분까지 너무도 닮아있다. 열심히 치우고 치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쓰레기들은 여전히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다. 때로는 변했다고 생각했던 마음들도 장마에 다시 떠내려온 쓰레기들처럼 또 다른 어떤 상황들로 본래의 더러움으로 돌아간다. 어릴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난 또다시 치우고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은 그때마다 흐려지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원하는 답을 책에서 본 대로 기계적으로 시험지에 적어내듯 해야 할 일이라고 하니 반복적으로 하긴 하면서도 이상을 꿈꾸는 근육들은 휘청거린다. 평소 존경하던 정치인의 입에서, 사랑 가득할 것만 같던 성직자의 행동에서 충격적 더러움을 볼 때 그 기운 빠짐은 회복되기 어려울 만큼 음의 방향으로 급가속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다만 내가 오늘도 멈추지 않는 것은 쓰레기 치우는 일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만큼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침 신문에 한강 수질이 굉장히 개선되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버려진 양심들이 결국 깨끗해지려는 손에게 항복을 했나 보다. 교과서가 옳았고 선생님이 옳았다. 덕분에 오늘 나도 조금 더 힘이 난다.

하루, 이틀, 1~2년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일들이 수십 년을 거치면서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적어도 지금은 둔치 공원에 당당하게 쓰레기 버리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내가 움직이고 힘내야 할 이유도 그래서 아직 의미 있다.

난 오늘도 장애는 다름일 뿐이라고 말한다. 듣는 이도 있지만 듣지 않는 이는 더 많다. 생각을 바꾸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많다. 그렇지만 난 믿는다. 한강의 수질이 개선되듯 우리의 인식도 분명히 개선될 것이다. 똑바른 생각을 하진 사람들이 마음에 쓰레기를 품고 사는 사람들보다는 적어도 많아질 날이 분명히 온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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