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 토크] 장애인에게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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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캔들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캡처
▲일타스캔들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캡처

  • 드라마 속 고개 숙인 장애인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드라마 ‘일타스캔들’의 한 에피소드로 최근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남재우(오의식 扮)가 매일 와플을 사러 들르는 카페 여직원에게 스토커로 오해받아 발생한 시비로 벌어지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주인공 남행선(전도연 扮)과 최치열(정경호 扮)의 관계를 더 진전시키려는 의도의 설정이겠으나 상황이 너무 억지스럽고 현실 법과도 상충하는 내용이어서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인식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지적은 이미 넘치도록 많으므로 굳이 덧붙이지 않겠으나 남행선의 태도에 대해서만은 한 번쯤 짚어 보고 싶다. 남행선은 언니가 버리고 간 딸 해이를 자신의 친딸로 키우며 딸과 장애가 있는 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억척스러운 엄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행동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딸 해이가 학원에서 부당하게 퇴출당했을 때 보인 그녀의 행동에서 그런 면이 잘 드러난다. 끈질기게 학원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학원 앞에서 메가폰을 들고 부당함을 호소하는가 하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학원의 반찬 주문을 적극 거절하는 등 부당함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단호하고 강인한 사람이다.

그러나 동생 재우의 장애 앞에서 그녀는 한없이 무력하다. 일방적으로 휘말린 시비로 경찰서까지 끌려와 비인권적인 상황에 떨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도 그녀는 내내 저자세로 일관한다. “그러게 왜 정상도 아닌 사람을 싸돌아다니게 하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그저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릴 뿐 단 한 마디도 항변하려 들지 않는다. 학원 앞에서 메가폰을 들고 부당함을 호소하던 당찬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사실 이런 식의 장면은 우리 드라마들에선 아주 흔하다. 드라마 ‘쌍갑포차’를 보자.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등장하는 5화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밥 먹는 식당에 왜 개를 데려와? 몰상식하게…???”

안내견을 데리고 식당에 들어선 시각장애인에게 한 손님이 무례하게 외친다. 이때 나선 사람은 주인공 강배(육성재 扮)다. 안내견은 법적으로 식당은 물론이고,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모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보장된다고 법 조항을 설명하며 강배는 무례한 손님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시원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강배가 그렇게 하는 동안 시각장애인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항의는커녕 그저 저자세로 미안해하며 심지어 안내견을 데리고 식당을 나가려고까지 한다. 차별에 순응하고 고분고분 물러서는, 자기의 권리조차도 비장애인이 나서서 옹호해 줘야 하는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장애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몹시 아쉬운 장면이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일일연속극 ‘내 눈에 콩깍지’에서도 마찬가지.
TS리테일 그룹의 장손인 장경준(백성현 扮)과 싱글맘 영이(배누리 扮)가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사랑을 이루어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장경준이 각막 이식으로 시력을 되찾은 사람이라 시각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 다루어진다. 음료수에 자세한 점자표기가 없어 불편함을 겪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각 음료의 이름을 자세히 점자표기한 음료를 출시하는 등 시청자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개선하는 바람직한 내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 10회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역시 앞서 ‘쌍갑포차’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흰 지팡이를 들고 편의점에 들어선 시각장애인과 ‘왜 이런 사람이 이런 데 와 가지고 민폐냐’며 무례하게 구는 손님 사이에서 비장애인인 주인공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시각장애인의 목소리는 역시 없다. 늘 그렇듯 죄인처럼 미안해하며 사죄하는 장애인의 모습만 있다. 이 에피소드가 그려진 ‘내 눈에 콩깍지’ 10회 당시의 시청률은 14%였다고 한다.

존재 자체가 미안하고 죄스러운 존재, 그래서 사람들 눈에 띄면 허겁지겁 존재를 감추고 사라져야 하는 야수처럼 장애인의 모습은 그렇게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주인공 남행선마저도 동생의 장애 앞에서는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장애인이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처럼, 고개를 숙인 채 숨는 야수처럼 드라마에 등장해야 하는가. 장애가 드라마에 더 자주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지만 장애인이 마치 인어공주처럼, 야수처럼 등장하게 하는 드라마는 인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남행선이 남행선답게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조목조목 주장하고, 안내견을 데리고 나온 시각장애인이 김예지 의원처럼 당당하게 안내견을 앞세우며 안내견과 동행할 권리를 말하고, 왜 이런 데 돌아다니냐 시비 거는 비장애인에게 ‘내 맘인데 어쩌라구!’ 멋들어지게 흰 지팡이를 내밀며 말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등장하는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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