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언제나 난간을 붙잡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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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덜 하다.ⓒUnsplash
▲걱정을 덜 하다.ⓒ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혼자 걸어가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보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듯하다. 도와줘야 하나 생각하고 도와줄까를 고민하고 도움을 시도한다.

“위험해요!” “그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손잡이를 잡으셔야 해요.” “앉아서 가세요.” “큰 길로 나가시는 게 더 좋아요.”라고 단정적으로 지시를 내리지만 나의 상황이나 진행 방향과는 그 의도나 방향성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사를 위해 파헤쳐 놓은 길이 그렇지 않은 곳들에 비해 울퉁불퉁하다거나 위험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다른 이들도 걸어가고 있고 내가 체험하는 위험의 정도도 그들이 느끼는 것과 실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이 내가 아는 범위에서 나의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면 더더욱 나는 그들의 걱정에 따라 다른 길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공사라고 하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가 나의 일신상에 강력한 위험신호로 느껴진다면 그들의 걱정에 앞서 나는 나 스스로 그 길을 걷지 않는 다른 안전한 선택지를 고민하고 선택했을 것이다.

지팡이로 가늠하는 도로의 상황이 멀쩡한 눈으로 보는 것에 비해 부정확하여 심각한 위험상황을 나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는 있겠으나 다양한 사람들이 통행하는 일반적인 길 위에서 그런 사건이 돌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전쟁상황이 아니라면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이 선한 의지로 불편한 보행로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는 단호한 명령은 내게 있어서는 그들의 의지와는 반대의 작용으로 수렴한다.

급히 계단을 내려가는 나에게 난간을 잡을 것을 강요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로 나의 안전성을 아주 조금 더 보장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잡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내가 처한 상황이, 같은 상황에서 난간 잡지 않은 수많은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위태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 바라보듯 엄마의 마음으로 걱정해 주시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면 이유 불문하고 호응해 드리고도 싶지만 매번 그런 예의 차리기엔 나도 나름의 바쁜 사정이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 것,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선호하는 것, 벽에 붙어 있는 모든 점자를 샅샅이 더듬지 않는 것, 점자블록을 따라서 걷지 않을 때도 내겐 대체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겐 바로잡아주어야 하는 틀리고 안타까운 상황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길을 걷을 때 조금 다른 특성 가진 나를 발견했고 그 다름의 기준이 시력의 부재와 관련한다는 것에서 우열의 추를 계산한다. 눈을 보는 것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작은 차이일 뿐이지만 실명 경험 없는 이들에겐 스스로를 월등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매우 타당한 근거로 작용하고 그것의 결과적 행동 발현은 가르침과 시혜로 나타난다.

내가 하는 판단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에서 기인하는 논리적 사고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은 시력의 우위에 있는 이의 판정이 내려지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내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폭력적 도움은 늘 불편하고 부담스럽지만 잘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제멋대로 우열을 나누고 가르치려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습성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식을 꾸짖는 부모의 시선도 신입사원을 나무라는 상사의 태도도 3살짜리 꼬마를 혼내는 5살짜리 꼬마의 모습에서도 우월적 지위를 확인한 인간의 독재적 판단과 확신이 발현된다. 그것은 스스로가 가진 수많은 오류를 까맣게 잊게 된다는 것에서 오히려 안쓰럽다.

동료 선생님들과의 작은 모임 중 제자의 미래를 걱정하던 나의 모습에서 문득 그 나쁜 확신을 보았다.

“저렇게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어떡하려고 할까요?”

“그 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미래에 대한 계획은 조금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가능성은 충분한데 왜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움직이지 않는 제자 녀석들의 삶을 틀린 것이라고 내 맘대로 단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 그리고 교사는 학생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에서 만들어진 주관적 우월적 지위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했다.

제자들이 가진 나와 다른 생각들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것이라 여겼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위치를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훨씬 넘어서는 오만한 전지적 시점으로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교사일 뿐 모든 면에서 제자보다 높은 위치에 서있지 않다. 모든 것이 옳을 수는 없다. 또 가르칠 수는 있지만 어떤 제자의 삶도 내 맘대로 재단할 수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던 오래전 제자들도 그들의 생각대로 충분히 잘 살고 있고 지금의 제자들도 그럴 것이다. 인격체의 다름은 대체로 틀리지 않다. 우리는 착각 속 우월함으로 그것을 판정해서는 안 된다.

나의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보일 수 있지만 조금 기다리고 지켜보면 난 별문제 없이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간다. 나보다 어린이들의 삶이 걱정되어 보이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계획대로 가고 있다.

걱정할 수 있지만 우월하다 느끼는 것에서 출발하는 당신의 도움은 이미 틀렸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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