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시험을 망쳐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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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R(Optical Mark Recognition) 답안지에 체크를 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OMR(Optical Mark Recognition) 답안지에 체크를 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시험 때가 다가오면 간절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는 학생들이 있다.

“선생님! 정리 한 번만 해 주세요.”

“다음 주가 시험인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이번 시험 범위는 너무 어려워요.”

“살려주세요!”까지, 표현의 언어가 다를 뿐, 목적하는 바는 하나 같이 단시간 내에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시험 날짜가 임박한 순간에 극도의 불안함을 느끼는 아이들의 특성은 대체로 수업시간에 성실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목숨을 구걸하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특성은 과거의 과오와는 관계없이 좋은 점수는 얻겠다는 욕심이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태도가 내게 어떻게 보이느냐와 관계없이 두 달 정도의 학습 진도를 하루 이틀 만에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특별한 운이 닿아 그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고 한들 그것은 그 녀석의 수학적 지식의 축적에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없다.

높은 점수가 잠시간 기쁨이 될 수도 있고 내신의 향상으로 대학을 가는 데에 조금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경험은 그의 다음 시험에도 삶에서 만나는 다른 과제들 앞에서도 좋은 영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험 점수가 학생의 학교생활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의 시험 점수에 목을 매는 것보다는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치 있다. 수업에 충실한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실수로 시험을 망칠 수는 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은 지식은 오랜 시간 다져진 것이므로 쉽게 날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학생은 냉정한 숫자로 평가되는 점수 때문에 성실히 학습하는 것보다 당장 시험을 잘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착각한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벼락치기를 시도했던 제자가 울상이 되어서 찾아왔다. 원했던 점수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아이는 세상을 다 잃은 듯 침울해져 있었다. 난 위로했고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운이라도 닿아서 그 아이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면 그는 다음번 시험에서 분명히 다시 같은 방법으로 도전할 것이다. 잘못된 성공의 경험이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은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어느 날의 실패에서 큰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제자 녀석이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시험보다 시험에 다가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랐다. 돈을 버는 것도 관계를 만드는 것도 무언가를 얻고 이뤄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어떤 시간으로 채워가는지는 그 성취에 비하지 못할 만큼 중요하다. 단시간에 이뤄낸 구체적 결과들은 잠시간의 기쁨이 될 뿐 그다음을 보장하지 못한다.

내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은 불편한 다툼의 시간을 겪어내며 만들어졌고 나의 삶을 지탱하는 가치들도 시행착오의 반복으로 다져진 것이다. 한 번의 속성 총정리로 잘 볼 수 있는 시험은 있지만 그렇게 얻어낼 수 있는 지식은 없다. 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관계나 물질들도 그 본질의 가치를 함께 가지지는 못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험점수나 손에 쥐어지는 물질이 아니다.

제자 녀석이 다음 시험에서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시험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깨닫기를 바란다. 그가 마주하게 될 삶의 많은 시험에서 작은 결과들에 가려진 큰 가치들을 놓치지 않고 얻어가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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