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의 TheWorldGO] 15년과 21년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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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5월 26일 국회 앞에서 46일 동안 진행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페이스북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5월 26일 국회 앞에서 46일 동안 진행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페이스북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전날 밤 내린 비로 더위가 한풀 꺾인 날이었다. 젖은 흙과 나무, 건물이 제 색과 향을 더 짙게 내뿜던 5월 26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국회 앞에 모였다. 46일 동안 진행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을 위해서였다.

단식농성의 마무리가 운동의 끝이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활동가들은 단식농성은 마치지만 투쟁은 계속할 것이라고 했고, 우리의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다 차려진 평등의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지 못한 정치가 실패한 것이라고도 했다. 15년 동안 진행된 것이라고는 이제 겨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차원의 공청회를, 그것도 반쪽짜리 공청회를 연 것뿐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시민들이 이뤄낸 것이라고도 했다. 활동가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빗물을 머금은 듯 더 짙게 다가왔다.

이 짙은 목소리가 입법자에겐 들리지 않았다. 거대 양당은 앵무새처럼 ‘사회적 합의’와 ‘나중에’라는 답을 반복했다.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에 왜 다수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일까. 국민 70%의 제정 찬성에도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고 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는 어떠한 모습인지, 어쩌면 그것은 특정 대상(예를 들면 보수 기독교 단체나 거대 기업들)의 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대한민국의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은 한국에 법 제정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원문: https://www.fidh.org/en/region/asia/south-korea/national-assembly-should-act-swiftly-to-enact-anti-discrimination)했고, 국회에 공개서한(원문: https://www.hrw.org/news/2021/12/20/joint-letter-south-koreas-national-assembly-calling-immediate-passage-comprehensive)을 보냈다. 비슷한 시기에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도록 촉구했다.

이미 대한민국이 가입하고 있는 여러 유엔인권조약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처음 한국에 법안이 발의되었던 2007년부터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최종견해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후에도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반복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유엔은 대한민국에 개별 차별금지법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주민, 성적지향 등의 누락된 차별 사유와 난민 아동, 장애여성 등의 교차차별 대상을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꼬집었다.

제2·3차 심의를 앞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심의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권고가 최종견해에 담기도록 장애인단체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어떤 발화들은 15년을, 21년을 외쳐도 가닿지 않을까. 곡기를 끊고, 지하철과 버스를 막아서고, 머리를 미는 투쟁에도 견고한 벽은 움직이지 않고, 차별과 혐오는 독처럼 퍼져나간다. 그럼에도 오늘 기자회견에서 미류 활동가는 말했다. 평등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한 시민들의 연대와 응원이 있기에 곧 다시 만나 새로운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누구도 차별금지법 안에서 언급하는 23개의 차별 사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은 그렇기에 반드시 제정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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