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 선 시각장애인들 ‘유리절벽’에 분통… 장차법 시행령안도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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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김성일(40세, 남) 씨가 맥도날드 매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더인디고
▲맥도날드 매장 키오스크 앞에선 시각장애인 김성일 씨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더인디고
  • 시각장애인연대, 맥도날드점서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
  • “복지부, 장차법 시행령 단계적 시행은 ‘책임 회피’” 비판
  • 현 시행령안으로 2026년 온전히 접근가능할까? 의구심도
  • 김예지 의원, 사용 당사자 필요 반영한 시행령 제정해야!

[더인디고 조성민]

내년 1월부터 무인정보단말기와 모바일 응용 소프트웨어 접근성 시행이 예정된 가운데, 수십 명의 시각장애인이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항의 차원의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복지부)가 연구 용역을 통해 공개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 및 21조와 관련된 시행령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2026년까지의 단계별 적용은 급변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지난해 6월 장애인차별금지법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무인정보단말기와 이동통신 단말기에 설치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모바일 앱) 등 장애인 정보접근성 보장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연구 용역에서 키오스크 보급 속도와 소상공인 등을 고려해 법 시행 후 1년 뒤부터 3년간 단계별 적용을 시사했다. 2024년 1월 28일부터는 공공, 의료, 은행기관을 우선으로 하고, 2026년 1월 28일에는 100인 미만 민간기업과 사업주까지 단계별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또 기존에 설치·운영하는 키오스크는 개선에 필요한 경과조치 기간을 뒀다.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16개 시각장애인 단체로 구성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11일 오전 서울 맥도널드 시청점에서 ‘시각장애인 당사자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한 회원이 ‘응답없는 키오스크, 유리장벽에 분통터진다’는 보드를 들고 있다. ©더인디고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16개 시각장애인 단체로 구성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는 11일 오전 서울 맥도널드 시청점에서 ‘시각장애인 당사자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한 회원이 ‘응답없는 키오스크, 유리장벽에 분통터진다’는 보드를 들고 있다. ©더인디고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16개 시각장애인 단체로 구성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대표 남정한, 공동대표 강윤택, 이하 시각장애인연대)는 11일 오전 서울 맥도널드 시청점에서 ‘시각장애인 당사자 키오스크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키오스크 주문부터 음료를 받을 때까지 유리장벽 첩첩’… 이같은 상황에서 또 시행령 단계별 적용? 이해 안 돼

30여 명의 시각장애인이 맥도날도 매장 안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직접 주문을 시도한 것. 하지만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키오스크는 단 한 대도 없다 보니, 매장 안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이 중에는 매월 활동지원 서비스 100시간을 이용하는 김성일(40세, 남) 씨도 있었다.
김씨는 이날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으로 인해 혼자 외출하게 됐다고 한다. 키오스크 앞에 섰지만, 예상대로 유리절벽이었다. 결국 매장 직원의 도움으로 음료 한잔을 계산한 후 영수증을 받았지만, 그에겐 또 다른 유리장벽이 있었다. 어디에 앉아 어떻게 음료를 받아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 매장 안이 소란스러워 주문번호 ‘5900번’ 호출 소리도 듣지 못했다. 20여 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본지 기자가 매장 직원에게 확인하니 음료가 이미 나와 있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안내판 번호도 사라진 것.

김 씨는 더인디고와의 인터뷰에서 캠페인에 참가한 배경에 대해 “그동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미안한데다, 혼자 키오스크를 이용할 경우 다른 손님을 기다리게 할까봐 걱정돼서 이용을 자제해왔다”며, “하지만 키오스크 접근성에 대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의무화돼 내년 1월부터 시행인데 복지부가 2026년까지 또 기다리라고 한다. 당연한 권리를 정부가 소규모 업체 등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김성일 씨가 키오스크에서 계산 후 호출 번호를 듣지 못해 음료를 받기까지 2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더인디고
▲김성일 씨가 키오스크에서 계산 후 호출 번호를 듣지 못해 음료를 받기까지 2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더인디고

왜 맥도날드 매장을 택했느냐에 대해선 “맥도날드는 상징에 불과할 뿐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 등에 키오스크 접근성이 되는 매장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맥도날드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지만, 접근성 정책에 따라 키오스크를 설치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정책을 전혀 준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맥도날드는 미국 장애인법을 포함한 접근성 법률에 따라 2015년부터 직영점을 중심으로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위해 키오스크에 새로운 키패드와 헤드폰 잭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각장애인 사용자가 헤드폰을 시스템에 연결한 후 스크린 리더와 촉각을 활용한 버튼을 사용해 메뉴를 탐색 및 선택, 장바구니에 항목을 추가할 수도 있다. 또 키오스크에는 화면 돋보기와 점자로 표시된 “인력 지원“ 버튼도 설치했다.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 가능하도록 충분한 바닥 공간도 확보해 설치했다.

현 장차법 시행령안으로는 온전한 접근성 의심’… 직접 사용할 장애인 당사자 의견 반영해야!

시각장애인연대는 이날 “음성안내 등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키오스크는 전자정보 접근에 있어 실질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 명백한 차별행위”라고 전제한 뒤, 복지부의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자료 등을 제공하라고 하지만, 실제 키오스크에서 구현될 수 없거나 현실 가능성이 없어 키오스크에 온전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낮다”고 우려했다.

또한 “정당한 편의 제공의 내용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서술해,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에 더 접근하기 좋은 새로운 기술이 나오게 되더라도 시행령의 좁은 해석으로 인해 이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이번 계기로 키오스크 등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에서 차별을 조장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11일 오후 1시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캠페인 현장을 찾아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필요에 의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될 것을 촉구했다. /사진=김예지 의원실
▲11일 오후 1시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캠페인 현장을 찾아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필요에 의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김예지 의원실

한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이날 오후 현장을 찾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키오스크가 등장했다고 하지만, 모두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면 이 또한 차별”이라며, “특히, 키오스크 접근은 먹고 사는 문제와도 연결되는 만큼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법 개정 의도가 잘 반영되지 않다 보니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의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행령이 한번 개정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직접 사용할 장애인 당사자들의 필요를 잘 반영해,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내용의 근거와 이유가 이번 시행령에 잘 담기길 바란다”고 밝혔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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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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