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윤석열차’와 자유, 자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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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를 꼽았다. 프리드먼 부부는 에서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을 통한 경제활동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왼쪽은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논란이 된 ‘윤석열차’, 오른쪽은 밀턴 프리드먼을 희극적으로 풍자한 케리커처 ⓒ더인디고 편집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꼽았다. 프리드먼 부부는 <선택할 자유>에서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을 통한 경제활동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왼쪽은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논란이 된 ‘윤석열차’, 오른쪽은 밀턴 프리드먼을 희극적으로 풍자한 케리커처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한동안 외교 참사로 떠들썩했던 정가(政街)가 이번에는 ‘윤석열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 금상 수상작인 ‘윤석열차’가 “순수한 예술적 감성으로 명성을 쌓은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시켰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제로 삼고 나선 것이다. 즉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시민사회의 반발이 일었다. 그림은 고등학생답게 색감이 발랄하고 표현도 직관적이다. 영국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토마스와 친구들’의 주인공인 증기기관차 토마스의 얼굴을 윤석열 대통령으로 의인화했고, 조종석에는 김건희 여사, 그리고 법복을 입고 큰 칼을 들고 있는 승객들이다. 대체 이 그림이 왜 문제가 될까 싶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고·듣고·느낀 대로 그린 현실이 어른들 입장에서는 못내 불편하고 찜찜했던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대선후보 때에도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도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그토록 목놓아 자유를 외쳤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윤석열차’에 대해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한 언론(프레시안)은 윤 대통령이 주창하는 ‘자유’의 의미는 지난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프리드먼 부부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꼽았다.

1980년에 밀턴 프리드먼과 로즈 프리드먼 부부는 <선택할 자유>에서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을 통한 경제활동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물론 교육이나 빈곤 퇴치, 차별 철폐도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에 맡기면 된다는 식이다. 복지제도 역시 “가부장적 보호”로 규정함으로써 없애야 할 악으로 규정해 버린다. 사인(私人)들 간의 ‘자발적 교환’이 가능한 자유시장에서 정부는 “사익을 촉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윤 대통령의 ‘자유’가 프리드먼의 ‘자유’라면 지금의 통치방식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통치방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적 통치란 1980년대 말 소련 붕괴 이후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물론, 사회민주주의자, 노동운동, 케인스주의자가 옹호한 복지국가 모델은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새롭게 들고나온 ‘분할 통치’를 의미한다. ‘분할 통치’란 신자유주의가 경제와 문화, 국가와 개인을 분리해 사회운동 세력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특히 90년대 이후 ‘다문화주의’를 앞세워 ‘재분배’ 요구 사회운동이나 ‘인정’을 요구하는 장애인이나 퀴어 등 소수자 정체성 운동이 정치와 연대할 수 없도록 하는 소위 갈라치기 통치방식이다.

이후, 이러한 통치로써의 ‘개별화 전략’은 한층 치밀하고 강고해졌는데 대표적인 개별화 분할 중 하나인 공(公)과 사(私)의 대립을 통해 장애인이나 퀴어 등 소수자 권리운동을 사소한 주제로 치부해버린다. 또 하나는 여성을 공격하는 것.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력은 여성 공격 소재로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전략을 써왔다. 이를테면 복지혜택을 위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게으른 ‘복지여왕’이란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아동과 장애인, 노인 돌봄의 책임을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세력이 소수자들에 대한 ‘분할 통치’ 전략을 구사하는 동안 소위 진보진영은 정체성 운동을 재분배 운동에 견줘 낮춰 보는 오류를 저질렀다. 결국 ‘인정 정치’와 ‘재분배 정치’를 구분한 낸시 프레이저의 접근법이 되레 계급과 정체성 사이의 분리를 재생산한 셈인데, 그럼에도 <평등의 몰락>의 저자면서 퀴어페미니스트 활동가인 리사 두건은 “중요한 것은 계급,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등을 가로지르는 모든 주체 사이의 대화”라면서 ‘연대’의 희망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리사 두건의 희망처럼 모든 주체들의 ‘연대’는 가능할까?

논의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보자.

‘윤석열차’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단순히 ‘어린 것이 감히’ 따위의 괘씸죄를 다그치는 수준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번 논란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논쟁으로 이어질 테고 마침내 정치적 진영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 ‘분할 통치’의 빌미로 이용될 전조가 엿보인다. 이미 ‘윤석열차’를 그린 학생은 물론이고 학생이 속해 있는 특정 지역에 대한 막말과 혐오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을 달고 각종 SNS에서 생산되고 빠르게 번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일반시민과 특정 장애인 세력으로 갈라치기했던 이준석과 전장연의 처벌을 요구했던 권성동 때처럼 말이다.

자유, 자유, 자유…

지난 광복절 기념식에서 31번, 유엔 기조연설에서 21번 외쳤던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가 분할 통치를 위한 ‘개별화 전략’의 시그널이라면, ‘우리’의 ‘정체성 운동’은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다시 묻자.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우리’는 새롭게 연대해 ‘개별화 전략’을 극복하고 더 정의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길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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