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돈가스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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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픽사베이
▲돈가스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나에겐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들이 있다. 라면, 치킨, 탕수육, 피자, 햄버거… 그리고 돈가스 역시 빠질 수 없는 메뉴다. 어릴 적 경양식 집에서 인스턴트 수프, 계란후라이와 코스로 나오던 빵가루 잔뜩 입힌 그것도, 언젠가부터 등장한 치즈돈가스, 고구마 돈가스도, 고급 일식집에서 나오는 두꺼운 녀석까지 “포크커틀릿”이나 “돈가스”라고 명명된 것들은 믿고 먹는 맛난 음식이다.

오늘이 아침부터 기분 좋을 수 있었던 것은 급식 메뉴가 수제 돈가스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한입 한입을 음미하며 빈속을 천천히 채워갔다. 바삭한 튀김옷과 두꺼운 고기, 새콤한 소스가 어우러진 오늘 식판의 주인공은 썰어지고 씹혀지는 소리마저 맛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이 줄어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최대한 씹고 또 씹고 하면서 조금 신기한 궁금증이 들었다. 돼지고기와 토마토소스 그리고 튀김가루가 하나의 어우러진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발견했을까? 생육이 일어난 곳도, 그 성분도, 모양도 어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는 것들이 이렇게 조화로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과정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역사가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을수록 다른 환경을 거쳐 온 그것들이 하나의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 오묘한 신비로 다가왔다.

돼지는 어느 축사에서 길러졌을 것이고 토마토와 밀은 각자의 밭에서 자랐을 것이다. 운이 좋게 한 농부의 손에서 성장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돼지고기는 돼지고기대로 삶아지거나 구워지고 토마토나 밀도 그것 그대로 음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맛있는 음식이 분명하지만 세 가지 재료가 하나가 되었을 때의 그것만큼은 못하다.

돼지의 입장에서도 살아있을 땐 토마토나 밀 따위는 자기의 먹이에 불과하다 느꼈을 것이고 토마토 입장에서는 빨갛고 예쁜 자신의 모양에 더 큰 가치를 매겼을 수 있다. 밀가루가 보기에는 주식이 될 수 없는 나머지 둘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당연히 그 주인 된 이의 입장에서도 본인의 소유가 더 나은 음식 재료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셋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누군가 그것들을 하나로 만드는 일을 시도하고 성공했을 것이다. 혹은 처음엔 둘이었다 셋이 되었을 수 있고 여러 다른 실패의 조합들을 거쳐 셋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세 가지 재료는 환상의 조합이 되었고 긴 시간 동안 많은 이의 입과 배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재료들 자신의 결정은 아니었겠으나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더 나은 새로움을 만드는 창조 작업을 이뤄냈다. 위대한 돈가스 창조사업에 심취해 있는 동안 잠시 잊고 있던 다른 반찬들 또한 나름의 놀라운 조합들을 품고 있었다. 김치는 김치대로 오곡밥은 오곡밥대로 어묵국은 어묵국대로 완벽한 다름의 기적적 만남이 현재의 행복한 밥상을 채우고 있었다.

식당의 메뉴판에는 수많은 이름이 존재한다.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음식들도 있으나 대체로는 수많은 재료의 다른 성분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메뉴판에 오를 수 있다. 사람 중에도 돼지고기 같은 사람도 있고 토마토 같은 사람도 있고 밀가루 같은 사람도 있다. 스스로의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으나 우리도 다름을 존중할 때 비로소 더 큰 가치를 이뤄낼 수 있다.

나는 어떤 재료의 인간일까? 내가 무엇이든 또 다른 인간을 만나고 합쳐져 기적의 인간 돈가스를 만들어 내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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