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법원직 공무원 면접 탈락’… 언어장애인, 법원 상대 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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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 ‘면접과정 장애언급 차별입니다’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8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 ‘면접과정 장애언급 차별입니다’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 편의안내·제공도 없고, 면접서 ‘장애’ 관련 질문 쏟아내
  • 법원행정처장 불합력처분 취소·대한민국 손해배상 해야

[더인디고 조성민]

면접 과정 등에서 장애인 차별행위가 있었으면 이를 처벌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법원이 오히려 장애인을 차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은 8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법원직 공무원 면접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법원행정처를 규탄’한 데 이어,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를 상대로 불합격처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은 8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직 공무원 면접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법원행정처를 규탄했다.©더인디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은 8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직 공무원 면접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법원행정처를 규탄했다.©더인디고

소송 당사자인 박 모 씨는 지난 7월 ‘2022년도 법원사무직렬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장애인 구분모집’에 지원해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박 씨는 중학교 때 뇌성마비 후유증으로 인해 조음장애가 있어 장애등급 언어 4급 판정받았다. 또 양손 및 팔다리에 부정위 운동성의 협동운동 장애가 있고 상지 및 하지 기능에 장애가 있어 지체장애 4급을 받아 합산 3급을 받았다.

박 씨의 억울한 사연을 대신 전한 장추련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 2020년부터 필기시험 합격만 이번이 세 번째이다. 법학을 전공한 박씨는 2010년부터 법원직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10년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면접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첫 탈락 소식을 접할 때는 자신의 미숙함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연거푸 세 번을 낙방하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 게다가 면접 때마다 일부 면접관으로부터 ‘언어 장애’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도 2차 인성검사에 최종 3차 면접시험을 보고도, 추가 심층면접시험까지도 봤지만 지난 8월 9일 최종 불합격처분을 받았다.

해당 시행계획 공고문에 따르면 9급 법원사무직 모집은 총 383명 중 28명을 장애인을 선발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법원행정처가 장애인을 모집하는 과정에 필기시험에 대한 편의지원 종류만 공지하고, 면접시험에서 박 씨와 같이 언어장애인에 대한 편의지원은 전혀 안내하지 않았다는 것이 박 씨의 설명이다.

▲올해 3월 공고된 9급 법원직 공무원 공개경쟁채용 시험 선발에정인원. /자료=법원행정처 홈페이지
▲올해 3월 공고된 9급 법원직 공무원 공개경쟁채용 시험 선발에정인원. /자료=법원행정처 홈페이지

박 씨는 6월 25일에 치러진 필기시험에선 ‘1.5배 시험시간연장’과 ‘확대답안지’ 등의 지원을 받아 시험을 봤고, 이어 7월에는 합격선인 52점보다 높은 60점으로 합격했다. 또 당시 장애인구분모집 필기시험 합격자는 선발예정인원 28명보다 훨씬 적은 4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면접시험에선 사전 편의제공 안내도 받지 못한 데다 당일 어떠한 편의제공도 지원받지 못한 채 면접을 봐야 했고, 게다가 면접관 중 한 명으로부터 ‘발음이 좋지 않은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취지의 질문까지 받아야 했다.

박 씨는 “장애인을 무시하는 질문에 화가 났지만, 면접관과 싸우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면접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당일 저녁 9시경 심층 면접대상자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그때도 면접 시간과 장소만 안내받았을 뿐, 어떤 편의 지원이 필요한지를 묻거나 안내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어 “심층면접 과정에서 한 면접관은 ‘업무를 하다 보면 민원인과 의사소통해야 하는데 할 수 있습니까?’라거나 ‘자기소개서에 조음장애란 단어가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라고 묻는 등 당사자의 장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차별적인 질문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추련은 “면접 과정에서 장애를 언급하는 질문 등은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이미 14년 동안 시행된 법의 내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차별행위를 이어가고 있다”며 “결국 필기시험 성적과 무관하게 언어장애가 결국 불합격의 원인이었던 것은 아닌지, 소송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다투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이 올해로 14년이지만, 고용과정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를 판단하고 법이 지켜질 수 있도록 엄중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법원이 정면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이날 연대 발언에 나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주현 정책국장도 30년 전 고등학교 입학 당시 차별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후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고작 필기시험은 볼 수 있게 해주고 시험시간 연장에 확대답안지까지 지원해주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하며 만족해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국장은 이어 “선배이자 활동가의 한사람으로 좀 더 싸워서 바꾸어내지 못해, 30년 전의 저와 똑같은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을 당사자분께 미안하다.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30년 전 제가 느낀 좌절감을, 오늘 당사자분이 느껴야 했던 것처럼, 30년 후의 누군가도 똑같은 좌절감을 느껴야 할 것”이라면서, “자신과 한뇌협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희망을 만드는법 최현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 상 편의제공 공고 의무 위반과 면접시험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위반 등 절차상으로도 위법하다. 또한 행정안전부나 인식혁신처 등은 면접에서 장애에 대한 질문을 금지하는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음에도 면접위원이 이를 어긴 것은 재량권 일탈 및 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원고인 박 씨가 대학 졸업 후 2010년부터 13년 동안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왔고, 게다가 3년 연속 필기시험에 합격했음에도 면접시험에서 불합격하는 등 손해를 봤다”며 “법원행정처장은 불합격처분을 취소하고, 대한민국은 박 씨가 본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인디고 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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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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