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목욕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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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게 서 있는 사람 ©픽사베이
▲자랑스럽게 서 있는 사람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모처럼 한가한 주말 새해맞이 목욕재계의 시간을 가졌다.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우리 집 샤워실에서 늘 하던 몸 씻기일 뿐이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더 정갈한 자세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각질 제거 오일도 바르고 향기 좋은 목욕용품들도 준비했다. 머리 감기부터 발 닦기까지 조금 더 꼼꼼하게 살피며 씻어 갔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발바닥 굳은살이 더 두꺼워진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나 손 피부가 나이 들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운동 좋아하고 여기저기 다니는 곳 많은 내 발은 내 몸에 붙어있다는 이유로 유독 고생이 많다.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열일 해야 하는 손은 위험한 것 더러운 것 기분 나쁜 것 가리지 않고 다 만져야 한다. 이곳저곳 터지고 꿰맨 자국 가득한 얼굴도 다른 이로 태어났더라면 조금은 더 말끔하고 깨끗하게 고급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많이 먹는 식욕 때문에 내 위와 장도 늘 과로 상태이고 더불어 성인 음료 덕분에 간의 피로도 최상위일 것이 분명하다. 냄새로 주변 상황을 알려야 하는 코도, 온종일 이어폰이 꽂혀 있는 귀도, 조금 다른 기능 때문에 남들 시선 받아내야 하는 눈도 올 한해 정말 고생이 많았다.

큰 보상도 없이 또 한해를 신세졌지만, 진심으로 난 나의 몸을 사랑하고 내 몸이 되어주었음에 감사한다. 장애라는 낙인에 이젠 나이마저 적지 않지만, 내 생각과 행동들은 내가 가진 몸을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다. 깨끗이 닦고 예쁘게 바르고 부드럽게 주물러 주면서 소리 내 “고맙다”라고 말했다.

난 분명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세상은 그것을 장애라고 부르고 부족함이라고 인식한다. 의학적 소견이나 현실의 환경으로 보면 일정 부분 그것은 옳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난 결코 시력 자랑이나 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더 빠르고 다른 이보다 더 세다면 좋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부족하다 하여 나의 존재적 가치와 궁극적 목표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값비싼 도구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렴한 도구라도 좋은 일에 쓰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이 목표가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몸이라도 옳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사람의 가치는 몸의 상태나 장애의 유무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상태이든 그 상황에 맞는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난 오늘 가진 내 몸과 내일의 나은 가치를 위해 또 한 번 함께 하기를 다짐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 내 몸은 부족할 수 있지만 내 생각과 움직임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에 따라 그 판정은 충분히 정반대로 변할 수 있다.

나를 위해 부단히 애써주는 내 몸에게 ‘멋지다!’라는 평가를 선물하고 싶다. 한 해를 꿋꿋이 살아준 나의 몸에 감사하며 또 다른 새해를 부탁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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